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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회 숙명여자대학교 편 - 기념과 공간

2015-01-22 17:00:46   , 1533 조회

written by 4월회

기념과 공간

* 일 시 : 2014년 11월 4일(화) 14:00~16:00
* 장 소 : 숙명여대 제2창학캠퍼스 창학관 B161호
* 강 연 : 김세준 숙명여자대학교 문화관광학부 교수
* 주 제 : 기념과 공간


박물관의 짧은 장면들

문화유산 혹은 우리의 소중한 기억을 영원히 남기려고 하는(후손 뿐 만이 아니라 인류가 사라진 이후의 생명체에게도) 무모할 정도의 인간의 노력은 박물관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제도를 만들었다. 박물관은 낯선 곳일 수도 있고 어색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의 기억에서 유사한 것을 꺼내어 스스로 이 공간을 규정지으며 더불어 새로운 지식을 부여한다. 짧게 연속되는 공간을 “집단”적으로 경험하며 당신만이 상상하는 박물관은 보존과 전시 수단을 넘어서 행복사업으로 변화하며 이를 심리학적, 공동체적 관점과 연결해 살펴보고자 한다.


재현과 의미

재현은 일반적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물, 의미, 정체의 상을 반사하는 의미로 모사, 유사의 개념과 동일하게 여겨진다. 모방의 의미로서의 재현의 개념은 인간이 세상을 인지하는 지각이 존재의 유사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존재를 유사하게 표현함으로써 실재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해석된다. 모방과 함께 재현은 표상의 개념으로도 해석된다. 표상에는 ‘무엇이, 무엇을’ 이라는 문제, 즉 주체와 대상이 전제되어 있다. 표상이란 대상에 대한 인식으로 표상의 개념으로서의 재현은 곧 주체에 대한 인간의 정신적 표상을 근거로 한 물리적 표상이다. 우리가 이미지 같은 표상에 의존하지 않고 사유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사유가 표상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언어든 이미지든, 그 어떠한 것도 실재를 ‘대표’ 할 수 없다. 따라서 언어나 이미지 등을 실재에 대한 주체의 표상으로 해석할 때 실재의 능동성과 물질성을 놓칠 수 있다. ‘재현’은 ‘재연’과 혼동되기도 한다. 재연은 한번 하였던 행위나 일을 반복하는 것을 뜻하며 주로 연극이나 영화 등을 다시 상영할 때 사용한다. 존재(existence) 혹은 실재(reality)가 주요 개념으로 작용하는 재연과 상이하다. 재현은 다시 드러남이다. 한편 재현은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존재를 이해하는 우리의 의식을 형성하며, 존재를 그대로 모방하고 표방하는 것을 넘어 존재가 내포하는 개념, 현상, 의미 등을 전달하여 세상에 대한 해석을 스스로 하게끔 하는 것이 소통적 역할로서의 재현이다.


물리적, 심리적 장소에 대한 기억들

인간의 창의성은 대지, 역사, 문화, 그리고 장소가 형상화된 통합적 산물이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지배적인 문화의 일방적 관점으로부터 탈출해 새로운 혼성된 문화를 창조하고자 한다. 장소에 대한 이론은 사회학, 지리학, 기호학, 인류학, 심리학 등의 여러 분야에서 발달되어 왔으며 학제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특정한 장소가 지니는 문화적 고유성과 정체성을 살려 삶의 질을 보다 풍요롭게 하여 진정한 의미의 지역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다양한 장소의 정의를 살펴보면 국지적이며 자연과 문화가 있고, 고유하면서도 상호연관성이 존재하여 형성되고 발전되고 진화하여 역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의미를 가진 곳이라고 하며, 이용하는 인간에 의해 추상적 공간이 경험과 의미가 가득 찬 구체적 장소(concrete place)가 되며, 일상생활이 영위되며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고 삶의 의미가 추구된다고 하였다. 즉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하며 의미를 가지는 분절된 삶의 현장이 장소이다. 대중-집단-개인-사회 혹은 세계-국가-지방-지역, 장시-중기-단기(시간)에 따라 사람들의 경험과 의미는 다르게 이해된다. 따라서 장소는 실체가 완성된 산물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동이 가능하다는 개념이다.


살아 숨 쉬는 장소

우리는 일상에서 일하고 쉬고 잠자는 다양한 장소를 인식하고, 반응한다. Relph는 “인간답다는 말은 곧 자신의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Heidegger는 “장소는 인간 실존이 외부와 맺는 유대를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실재성의 깊이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주체시킨다.”라고 주장했다. 인간이 세계를 경험하는 심오하고도 복잡한 측면이 장소인 것이다.
장소에 대한 이론은 인류학, 지리학, 기호학, 사회학 등의 학문 분야에서 시작되어 정립‧발전되어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건축학, 심리학, 경영학, 관광학 등에서 다차원적으로 재정의 되어 실증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각 분야에서 장소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증대되는 이유는 특정 장소가 지니는 문화적 고유성과 정체성을 살림으로써 삶의 질을 보다 풍요롭게 할 때 진정한 의미의 지역(혹은 각 분야에서 연구의 대상이 되는 장소의 여러 단위)발전과 활성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소의 가치는 인간의 사회적, 경제적 활동이 영위되는 영역적 실체를 넘어 상품처럼 경쟁이 이루어지는 기본단위로 인식된다.


장소성과 공동체의식

한편 장소성(sense of place)은 사람이 지각하는 장소,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환경에 대한 인지를 말한다. 장소성은 장소에 대한 애착(place attachment), 장소의존성(place dependence), 장소정체성(place identity)으로 설명되며 애착은 특정장소에 대한 심리적 태도와 경향, 존중, 감정적 유대라고 정의한다. 물리적 환경은 그 기억을 자극하는 대상물로 인해 이미지를 얻기도 한다. 의존성은 스스로를 장소에 연계되어 있다고 인식하는 수준이다. 선호도를 높여 잠재적으로 반복된 장소활동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정체성은 장소에 대한 가치로 먼저 기억, 생각, 가치 등에 의해 생길 수 도 있고, 학교나 이웃, 집과 같이 관계에 의해 형성이 되기도 한다. 장소는 사람으로부터 정체성을 얻고 사람도 장소로부터 정체성을 얻기도 한다.

공동체 심리학(Community Psychology)에서는 지역사회를 사람 간의 친분과 연대, 즉 사회적 관계망의 차원에서 참여정도, 형태, 감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으며 그 결과 도시의 규모와 인구밀도에 따라 공동체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점을 밝혔고, 다른 연구에 의하면 지역사회가 개인의 인생주기와 제도적, 규범적 차원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 있다. 공통적으로 지역사회는 이렇게 복잡한 그물망으로 이루어져있고 애착도는 거대한 규모의 관습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는 이론이다. 구체적으로 지역사회공동체 의식을 측정하는 지표는 필요의 강화(Reinforcement of Needs), 소속감(Membership), 영향(Influence), 정서적 연계(Emotional Connection)를 세부 항목으로 하고 있다.


문화공간의 등장

문화공간은 문화가 행위로 표현되는 시각적 장소로, 문화를 있게 하는 장소적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고대의 큰 마당, 사랑방, 장터, 산대잡희가 놀아지던 가설무대, 사찰의 앞마당, 향교, 사당 같은 것이, 근대 이후에는 각종 도서관, 박물관, 극장, 영화관, 문화원, 전시장, 국제회의장, 미술관 등을 문화공간으로 통용한다. 이처럼 구별의 범주는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문화공간의 개념은 그 시대, 그 지역이라는 ‘시공간적 개념’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즉, 도심이라는 장소의 공간적 개념과 다양성이 요구되는 현대라는 시간적 개념을 포함하는 문화공간은 이 시대의 다양한 예술가들이 문화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장이자 시민들이 도시 속에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가와 오락과 휴식을 위한 장소로서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점에 기반을 둔다.

문화공간 개념 내의 한 범주인 박물관은 ‘유형‧무형의 인류 유산을 소장 ‧ 보존 ‧ 연구 ‧ 소통 및 전시‧교육하는 비영리, 항구적인 기구이고, 공공적 문화향유에 기여하며, 전문적인 운영체계를 확립하고 대중을 위하여 공개하는 장소이다. 박물관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이후 인문‧과학‧예술 활동 등이 밀접하게 연계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교육과 관광 기능이 빠르게 확장되는 등 국가마다 다양한 특징을 형성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20세기 이전, 근대적인 박물관은 그 상당수가 감상자를 위한 기구이기 보다는 소장자나 설립주체의 입장에서 운영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에는 제한된 계층만의 문화가 아니라 이른바 ‘문화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가 실현되어지는 과정에서 박물관의 형태와 성격이 세분화되어지고 경영 및 시스템 등에서도 많은 변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는 국제박물관협의회의 결의문과 강령요지에서도 드러난다.

그 변화 중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에서 공공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의 2004년 총회(서울 개최)에서 개정된 ‘국제박물관협회 윤리강령’에는 박물관이 자연과 문화유산을 보존‧해석‧관리하고 지식의 근거를 보유한다는 내용 외에도 공공서비스와 공익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자원을 보유하며 지역사회와 긴밀히 협력하여야 함이 제시되어 있다. 미국박물관협회의 박물관에 대한 정의에서도 공교육 측면에서의 박물관 역할이 언급 되고 있으며, ‘일시적인 전시를 개최하기 위한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중략)… 일반 대중들에게 교육과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라는 문구를 통해 공공적 사업으로서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거한 우리나라의 박물관 정의에서도 역시 ‘문화‧예술‧학문의 발전과 공중의 문화 향유권 증진’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전시공간은 유물이나 예술품을 전시하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하나의 공공적 성격을 띤 문화공간으로 제공되어야 하며, 그러한 역할과 기능을 다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박물관의 모습인 것이다. 나아가 지역사회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문화들 사이의 소통과 통합을 통하여 지역의 응집력을 도출하는 공간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며 지역 공동체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박물관이라는 건축유형이 가지는 가장 근본적인 기능은 문화, 사회, 역사, 예술사 등 여러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간주되는 예술작품을 보관 및 전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사람들이 관람하는 가운데, 앞서 언급한 공공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하여 박물관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특별한 ‘장소’가 된다.
최근 선진도시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박물관 장소의 경향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도시계획 측면에서의 장소로써의 박물관을 살펴보면, 대규모 박물관 조성과 개축, 박물관 클러스터(cluster) 조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스페인, 영국, 프랑스, 미국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 많은 나라가 도시개발의 주요전략으로 대규모 박물관 조성과 개축, 박물관 클러스터 조성 등을 통한 문화도시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 활동이 공간계획에서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특히 도시의 기능이 서비스의 산업화로 전환됨에 따라 서비스 고급화·차별화·다양화를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박물관의 집적과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집적 형태는 방문자로 하여금 단독의 입지 환경에서보다 다양한 활동과 지각을 끌어낼 수 있고 접근성과 기능성의 측면에서 효율이 있다는 측면에서 각광받고 있다. 이 형태의 또 다른 용어인 박물관 복합단지(Museum Complex)는 학술적으로 정의된 것은 아니나, "도보로 가능한 거리 안에서, 일정한 지역에, 다수의 박물관이 위치하여, 개별 박물관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기능적 공간적 연계를 통하여,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고자 집적 조성된 공간"으로 설명되어지고 있다. 리조트, 혹은 놀이시설과의 복합화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둘째, 기존의 건축물이나 시설을 박물관으로 재생하여 장소성을 부여하는 경향이다. 장소성 형성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Tuan에 의하면 무엇보다 풍부한 역사와 문화가 가시화될 속성을 가장 풍부하게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풍부한 가시적 요소들로부터 후세대 시민들은 장소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재창조할 수 있다. 물리적 환경, 공동의 기억, 행위와 관계, 문화적 상징, 도시 맥락이 그대로 남아있는 기존의 건축물이나 시설이 박물관으로 재생되었을 때 그 장소는 정체성을 갖게 되고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들을 발현하게 된다.

과거의 시간 축적이 역사라면 한 장소의 경관은 과거의 시간이 공간 속에 응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박물관의 경관은 그 외관에서 혹은 그 내용에서 우리 자신의 역사를 보여준다. 역사적 건물이 박물관이 된 사례를 살펴보면 이러한 유형의 보존은 과거의 건축물을 현재에 사용하는 그 자체 기능 그 사례로는 고대도시의 유적을 진열장으로 옮기는 대신 그 위에 최소한의 건축 구조물을 얹어 흔적의 공간 자체를 박물관화한 베수나 박물관(Vesuna Museum)이나 양조장 건물을 재생시켜 만든 삿뽀로 팩토리(Sapporo Factory), 유서 깊은 건축물인 몰레 안토넬리아나(Mole Antonelliana)를 활용한 이탈리아 국립영화박물관이 있다.

과거의 회복 뿐 아니라 과거의 역사가 그곳을 방문하는 현 시대의 사람에 의하여 경험되면서 과거와 현재를 통합하게 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박물관은 장소로서 기능한다. 박물관에 형성된 장소성은 다른 곳과 박물관 장소를 구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억장치로 작용하며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과 결합되어 독특한 장소성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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