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회 고려대학교 편 - 한국의 정치문화와 민주정치
2014-09-29 16:08:44 , 1339 조회
written by 4월회
한국의 정치문화와 민주정치
일 시 : 2012. 10. 24(수) 16:00~18:00
장 소 : 고려대학교
강 연 : 신명순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주 제 : 한국의 정치문화와 민주정치
I. 문제의 제기
현재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해 높은 불신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불신의식은 국민들이 정치인들과 정치전반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 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은 적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이러한 정치현실을 개선하여 국민들이 만족할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불신의 원인이 무엇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을 추진해야 하는 가를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정치가 잘못되는 것은 정치인들이 잘못하기 때문이지 무슨 다른 원인이 있다는 것인가라고 생각하기 싶고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만 잘하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정치에서 정치는 정치인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의 모든 잘못을 정치인들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적절한 방안이 아니다.
이 글의 핵심은 민주정치에서는 정치를 주도해 나갈 사람들을 선출하고 결정하는 것이 국민들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정치가 잘못되고 있는 원인을 정치인들의 잘못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국민 자신들의 잘못에서도 찾아야 한다는 점을 국민들의 정치문화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정치가 잘 되는가 못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제도와 정치문화의 두 가지이다. 정치제도는 법의 규정들로 만들어 지며, 한 국가의 정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결정하는 제도들로는 정부형태 유형, 정당제도, 선거제도, 의회제도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제도들은 관련된 법들인 헌법, 정당법, 선거법, 국회법, 정치자금법 등에 의해 작동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부터 민주화가 되면서 현실정치를 결정짓는 다양한 정치제도들과 이에 관련된 법들이 지속적으로 개정 보완되어 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법과 제도의 측면에서는, 이러한 법들이 제대로 준수되고 제도들이 제대로만 운용만 된다면 어느 선진국가에도 못하지 않은 민주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즉 그동안 정당법, 선거법, 국회법, 정치자금법 등 정치를 규정짓는 모든 법규들에서 지속적인 개선과 개정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법이나 제도는 더 이상 바꾸지 않아도 민주정치의 실천에 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자들이나 정치인들은 우리나라의 정치발전이나 개혁을 논의할 때 법이나 제도를 바꾸는 개혁들만을 논의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적절한 대안제시가 아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원인은 법이나 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제도를 운용하는 정치인들이 잘 만들어 놓은 법을 지키지 않거나 제대로 운용하지 않는 것이 원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리나라 정치의 잘못은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잘못된 정치문화와 이러한 정치인들을 선출하는 국민들의 잘못된 정치문화에 원인이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II. 정치문화란 무엇인가?
정치학은 현실정치에서 나타나는 정치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면서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학문이다. 정치를 결정짓는 결정적 요인들 중의 하나로 정치문화라는 개념이 정치학에 도입된 것은 1956년이다. 물론 정치문화 이론에서 설명하는 내용들이 그 이전에도 정치학자나 다른 분야의 학자들에 의해 다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생각이나 주장들을 정치문화라는 개념을 통해 체계적으로 정치현상을 설명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이다. 정치문화라는 개념에 대한 관심은 1950년대 중반부터 사회과학에서 주도적 경향이 되었던 행태주의의 일부로 시작되었고 특히 심리학에서 발전된 이론을 정치학에 수용한 정치심리학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졌다. 한국에서는 정치문화이론이 소개된 것은 1961년이었고 1960년대 중반부터 정치학교육에서 정치문화가 주된 내용으로 다루어졌다.
이 글에서는 지면관계상 정치문화에 관한 이론과 내용을 길게 소개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치문화이론의 핵심은 한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정치는 그 나라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문화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정치문화인데, 정치문화란 국민들이 정치를 결정짓는 것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 즉 생각을 말한다. 이 때 정치를 결정짓는 것들로는 국가,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정권, 중요한 정치지도자들인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 및 정치인들, 안보‧외교‧경제‧복지‧사회‧문화 등의 여러 분야의 정책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것들 외에도 정치가 이루어지는 과정, 예를 들면 선거과정이나 정당활동 등에 참여하는 나 자신이나 가족, 친구, 선후배, 더 나아가서는 국민들도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다. 즉 정치문화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에 대해 국민 개개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면서, 국민들이 투표와 같은 정치적 행위를 할 때에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나타나는 정치현상은 정치문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또한 국민들의 일부이면서 정치를 주도하는 정치인들이 위의 여러 요소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가 그들의 정치행동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정치문화는 정치현상을 결과 짓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III. 한국정치에서 민주정치의 실패와 그 원인인 국민들의 정치문화
정치문화는 일반적으로는 국민들 전체가 가지고 있는 정치문화를 지칭하지만 사실상 국민들은 선거라는 특정한 시기에만 자신이 정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행동으로 나타낸다. 이에 비해 대통령, 국회의원들 및 정치인들은 수시로 정치적 결정을 내리며 이때의 행동은 그들이 정치에 대해 갖는 생각인 정치문화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정치현상은 정치인들의 정치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정치인들이 정치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게끔 만드는 결정은 국민들이 한다. 즉 국민들이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의 직책을 맡도록 선발한다면 정치가 잘 되겠지만 애초에 정치를 잘 못할 사람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으로 선출한다면 그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가 제대로 된 정치가 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처음부터 국민들이 민주정치를 제대로 할 정치인을 선출하는 것이 필수적인데도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잘못된 정치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선거에 참여하고 후보에게 투표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민주정치를 제대로 할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민주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는 원인이라는 점을 국민들의 정치문화를 중심으로 규명한다.
1. 선거와 관련하여 잘못된 국민들의 정치문화
선거는 정치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국민들의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정치를 제대로 실천해 나갈 자질이나 능력, 그리고 의지를 갖지 못한 사람을 선출한다면 그들에 의한 정치가 잘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실시된 선거들에서 선거결과를 결정지었던 요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서도 1970년대 이래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결정적 요인은 지역주의이며 그중에서도 호남과 영남지역에서 강하게 지속되고 있는 지역주의 현상이다.
1) 영남과 호남의 지역주의 정치문화
민주정치를 행하고 있는 국가들에서 시행되는 선거를 분석한 연구들은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유권자들이 후보들에게 투표하는 투표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로 제시하는 것이 후보들이 표방하는 정책이나 공약, 후보를 공천한 정당이 표방하는 이념 그리고 후보 개인의 자질의 세 가지이다. 또 다른 기준에서 제시되는 중요한 요인은 회고적 투표인가 아니면 전망적 투표인가의 여부이다. 회고적 투표는 후보나 후보를 공천한 정당들이 지난 임기동안 맡은 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좋은 업적을 남기는 정치를 하였는가를 평가하여, 잘 했다고 평가하면 다시 한 번 지지를 하고 반면에 지난 임기 동안에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업적을 남기지 못하였으며 국정 운영에 실패를 하였다면 다른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전망적 투표는 지금까지 해온 정치의 결과를 평가하는 것보다는 후보나 정당이 앞으로의 임기동안 무엇을 할 것이며 이것을 제대로 수행할 능력이나 비전이 있는가를 보다 중시하여 앞으로의 임기를 제대로 할 후보나 정당을 선택하는데 중점을 두는 투표행태이다.
또 다른 투표의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으로는, 이념이나 계층, 세대 등이 있다. 또한 성별이나 학력, 출신지역과 같은 유권자의 사회경제적 배경도 유권자들이 후보나 정당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제시한다.
민주정치를 실천하고 있는 선진국의 선거에서 나타나는 투표행태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요인들이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각종 선거에서는 이러한 요인들 보다는 유권자가 살고 있거나 또는 출생한 지역과 같은 지역출신의 후보나 출신 지역을 대표한다고 생각되는 정당이 공천한 후보에게 투표하는 지역주의 투표행태가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여왔다. 이러한 점은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선거들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제15대부터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까지 영남지역과 호남지역에서의 선거결과를 보여주는 <표 1>과 <표 2>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영남과 호남지역에서 선출하는 국회의원들의 의석수는 91석으로 이 숫자는 전체 지역구 국회의원 의석인 246석의 37%를 차지한다. 영남과 호남의 모든 유권자들이 지역감정이나 지역주의 의식에 근거해서만 투표하는 것은 아닐 것이지만, 영남과 호남 이외의 다른 지역들에서는 <표 1>과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은 지극히 불균형적인 선거결과를 볼 수 없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중의 37% 정도는 지역주의라는 요인에 의해 선출되며 1987년 이래 25년 동안 대한민국 국회의 37%는 이런 정치인들에 의해 정치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영남과 호남지역 유권자들의 정치문화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민주정치가 제대로 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는 영남과 호남의 유권자들이 선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치문화 때문이다. 민주정치에서 선거는 국민들의 대표를 뽑는 과정이며 이때 유권자들이 고려해야 할 요인들은 위에서 언급한 정책, 정당, 인물, 회고적 평가, 전망적 평가, 계층, 세대 등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영남과 호남에서 지역주의에 의거하여 투표하는 유권자들에게는 이러한 요인들이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들이 선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상대 지역의 정당이 공천한 후보는 그의 자질, 능력, 경력, 공약, 정책, 비전, 과거의 업적, 앞으로의 임기동안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가고 우리나라의 중요 현안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 등등은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다. 무조건 상대지역의 정당에서 공천한 후보는 절대 찍어주지 않는 것이 우리가 선거에서 해야 할 일이다”라는 생각이다. 즉 선거를 정치를 잘해 나갈 정치인을 국민의 대표로 뽑는 기회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지역 정당이나 그 정당의 후보는 무조건 배제해 버리는 일로 생각하는 정치문화가 영남과 호남의 선거결과를 결정짓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역주의 정치문화에 기반을 둔 투표행태가 국회의원들의 당선 여부를 결정짓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이나 자질, 국회의원으로서 국가를 이끌어 나갈 정책이나 비전, 계획을 평가받아 선출된 것이 아니며, 이러한 국회의원들이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가 정치를 제대로 해 나갈 것으로 기대할 수가 없다.
이러한 지역주의 정치문화를 바탕으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선출된 가장 중요한 기준이 유권자들의 지역주의 정치문화이기 때문에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국가나 국민을 위한 민주정치의 실현이라기보다는 유권자들의 지역주의 의식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정치가 제대로 된 민주정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많은 유권자들이 “상대 지역의 정당이 공천한 후보는 절대 뽑아줘서는 안 된다”라는 잘못된 지역주의 정치문화에 매몰되어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2) 선거운동기간 동안의 흑색선전이나 돌발 상황에 영향 받아 투표하는 정치문화
우리나라 선거와 관련하여 잘못된 정치문화의 또 한 가지는 유권자들의 투표행태가 짧은 선거운동기간 동안에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해프닝적 사건이나 진위를 가릴 수 없는 흑색선전 등에 영향을 받아 투표하는 점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근래에 실시된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들에서 수시로 나타났는데 몇 가지 예를 들면 제15대와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문제, 제17대통령선거에서의 이명박 후보에 대한 BB문제,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 제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의 나꼼수현상과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동 등이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선거의 본질 면에서 보면 핵심적인 사안들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후보의 도덕성이나 품위 등의 면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은 후보의 자질, 정책, 비전, 리더십, 이념 등이나 그가 소속한 정당의 특성과 업적과 같은 본질적 속성들이다. 만일 이러한 본질적 속성들 보다도 후보 본인이 아닌 가족의 문제나 후보의 일회성 발언 또는 일시적 현상 등이 유권자들의 투표행태를 결정하는 본질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이러한 선거는 민주정치를 담보하는 선거가 될 수 없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상당수는 선거를 국가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자신이 소속한 계층이나 조직,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대변인을 선택하는 기회로 생각하기 보다는 이러한 “이익” 과는 관련 없는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요인에 좌우되거나 영향을 받아 투표하는 정치문화를 나타내고 있다.
선거에 임하는 국민들의 이러한 정치문화 때문에 정당이나 후보나 정치인들은 정책이나 공약, 업적, 미래에의 비전 등으로 유권자에게 호소하기 보다는 한 건의 폭로나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책략으로 선거를 치르려 하며 진실과 허위를 밝히기라 어려운 ‘아니면 말고 식’의 흑색선전이나 네거티브 공세에 매달리는 잘못된 선거문화를 되풀이하고 있다. 본질을 호도하는 이러한 정치문화와 선거문화에 의해 선거결과가 결정되고 이러한 책략을 적절하게 이용한 후보가 당선이 된다면 그들이 제대로 된 민주정치를 실천하고 국민들이 만족하는 정치를 이루어나갈 것이라 기대를 할 수 없을 것이다.
3) 새 사람이면 무조건 좋다는 잘못된 정치문화
선거에서 나타나는 유권자들의 잘못된 정치문화의 또 한 가지는 새로운 사람을 무조건 선호하고 지지하는 정치문화이다. 그동안의 우리나라 정치가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불신을 받은 이유가 기성 정치인들이 잘못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유권자들이 기성 정치인들을 외면하고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이들을 선호하는 현상은 일면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선거에서 정치에 처음 입문하는 후보들이 당선되는 초선의원의 비율은 <표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우 높다.
근래에 실시된 5번의 국회의원선거들 중에서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초선의원의 비율이 62.9%나 되었고 나머지 4번의 선거에서도 초선의원의 비율은 모두 44%를 넘었다. 이처럼 높은 초선의원들의 비율은 1950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하원의원의 재선비율이 90% 이상이었고 상원의원의 재선비율은 65-95%의 높은 비율이었음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초선의원의 비율이 이처럼 높게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앞에서 국회의원을 선출할 때 어떤 요인들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가를 논의한 부분에서 지적한 요인들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기존 정치인들은 부패하고 무능하고 잘못하기 때문에 무조건 새사람으로 바꿔야 한다”는 “바꿔 바꿔”선동이나 열풍에 많은 유권자들이 부화뇌동하는 정치문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국정에 대한 경륜이나 경험, 그리고 전문성이 부족한 인물들이 국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상황이 4년마다 되풀이 되는 우리나라의 국회에서 효율적인 국회운영과 국정운영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의정활동의 경험이나 국회전문성이 부족한 초선의원들은 정당이나 국회 지도부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가 쉽고 국회나 국회의원의 전문성은 장기간 해당업무에 종사하는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에 비해 떨어져 효율적인 국회운영이 저해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국회나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고조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정치가 불신의 대상이 되는 근원은 국민들이 선거에서 비판받을 소지가 많은 후보들을 선출한데서부터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초선의원들의 다수가 유권자들이 개별 후보들의 자질이나 경륜, 비전, 정책 등을 세심하게 검증한 후 투표하여 당선된 것이 아니라 정당이나 시민단체들의 무책임한 “바꿔” 선동이나 운동에 휘몰리어 “새 사람은 무조건 참신하고 청렴하고 자질이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정치문화의 결과로 선출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유권자들은, 국회의원의 적임자라면서 자기가 새로 뽑았던 국회의원들의 절반 정도를 4년 후에는 다시 갈아치우는 투표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한 두 번 하고 나면, 무조건 새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 좋은 정치를 위한 길이 아님을 터득하면서 후보가 단순히 새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 자질이나 계획하고 약속하는 바가 국가나 지역이나 개인을 위해 필요한 사람인가를 따져서 투표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새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잘못된 정치문화는 지속되고 있다.
2. 국회와 관련하여 국민들의 잘못된 정치문화
우리나라 국민들의 잘못된 정치문화는 선거뿐만 아니라 국회와 관련해서도 나타난다.
1) 국회에 대한 무관심과 낮은 지식
국회와 관련하여 국민들의 잘못된 정치문화의 첫 번째는 국회의 활동에 대한 관심도 낮고 또 국회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국회가 잘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매도하는 점이다. 국회활동에 대한 관심도를 조사한 2005년의 한 조사에 의하면 국회활동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응답이 30.1%로서 이중에서 관심이 매우 높다 라는 응답은 2.7%에 불과하였고 관심이 조금 있다는 응답이 27.4%였다. 이에 반해 국회의 활동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응답은 있다는 응답의 두 배를 넘는 69.9%였으며 관심이 별로 없다가 58.4%, 전혀 없다가 11.5%였다. 이처럼 국민들의 3분의 2 이상은 국회의 활동에 관심이 없으며 국회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같은 응답자를 대상으로 하여, 국회의 역할수행 정도를 조사한 동일한 연구의 결과를 보면 국회가 역할 수행을 잘한다 라는 응답은 4.1%로 이중에 잘한다는 응답은 0.8%에 불과하였고 잘하고 있는 편이라는 응답도 3.3%에 불과했다. 국회의 역할 수행이 중간 정도라는 응답은 36.3%였던 반면에 국회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응답은 59.6%였으며 이들 중에서 못하는 편이라는 응답은 38.5%였고 못한다 라는 응답은 21.1%였다.
이 조사가 7년 전에 실시된 것이기 때문에 2012년 현재 국민들의 국회에 대한 생각이 이 조사결과와 완전히 같을 것으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거의 유사할 것으로 보아도 타당할 것이다. 이 조사에서 나타나는 놀라운 점은 우선 국회가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응답이 4.1%밖에 되지 않아 지극히 낮다는 점이다. 그러나 국회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치문화가 더욱 심각한 점은 국민들이 국회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국회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면서 무작정 국회는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점이다.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이 같은 잘못된 정치문화는 선거에도 그대로 연결되어 유권자들이 부적절한 후보에게 투표하는 잘못된 정치문화를 초래하고 있다. 즉 유권자들은 국회에 관심이 없고 국회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선거 때에는 자신이 지난번에 선출해준 국회의원이 입법 활동이나 의정활동 면에서 무엇을 하였는지 또 제대로 하였는지에 관심이 없다. 이러한 점은 앞에서 지적한 바 있는 회고적 투표가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투표행태에서는 고려되지 않고 있음을 나타낸다.
국민들의 이러한 정치문화는 우리나라의 정치가 제대로 될 수 없게 만드는 잘못된 요인으로 작동한다. 즉 국회의원들은 자신을 선출한 유권자들은 일단 나를 당선시켜 놓은 후에는 내가 국회에서 어떤 입법 활동이나 행정부 견제활동이나 의정활동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점을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은 이런 의정활동으로 유권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 다음 선거에서 재선하려 하기 보다는 자신들에 대한 공천에 큰 권한을 행사하는 정당 지도자들이 원하거나 이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정치활동에 보다 많은 노력과 신경을 쓴다. 이러한 악순환은 궁극적으로 국회의 주체들인 국회의원들이 국회 본연의 활동보다는 다른 일에 전념하여 국회의 활동이 제대로 될 수 없게 만드는 악순환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정기국회마다 국정감사를 잘했다고 보도되는 의원들이 많이 있고 또 매년 의정활동을 잘하였다고 상을 받는 모범적인 의원들의 명단이나 기사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지만 이러한 모범적 의정활동은 정당지도부에 의한 공천이나 유권자들이 결정하는 선거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며, 이러한 잘못의 근본적 원인은 유권자들의 선거에 대한 잘못된 의식 즉 잘못된 정치문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앞에서 논의한 바 있는 문제인 선거기간 동안에 즉흥적으로 전개되는 사건이나 흑색선전에 유권자들이 휘둘리는 잘못된 정치문화는, 국회나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 수행에 관심이 없거나 모르고 있는 유권자 정치문화와 직결되어 있다. 즉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 업적은 유권자들이 어떤 후보에게 투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고려되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정당이나 후보들은 선동이나 네거티브 선전, 그리고 진위가 불분명한 데마고그를 살포하여 유권자들의 즉흥적 감성에 호소하려는 전략에 매달리는 선거운동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2) 국회 의정활동에서 폭력이나 몸싸움과 관련한 국민들의 잘못된 정치문화
국회와 관련하여 국민들의 잘못된 정치문화의 두 번째 예로는 국회의 의정활동에서 되풀이 되고 있는 국회의원들에 의한 폭력 사용이나 몸싸움 문제이다. 국회에서 국회의원들 끼리 폭력을 행사하거나 몸싸움을 하는 행위는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계속되고 있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이러한 잘못된 행태가 더욱 심해지고 거의 제도화된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2년 5월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리버스터제도를 다시 국회법에 규정하는 등 제도를 통한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정치행태의 문제이고 국회의원들과 국민들의 정치문화에 근거한 문제이기 때문에 제도적 보완만으로는 해소할 수가 없으며 정치문화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최근 10여 년 간 국회에서 있었던 국회의원들 간의 폭력행사나 몸싸움들의 불법적 행위들의 예를 보면 <표 4>와 같이 매년 주기적으로 행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회에서 국회의원들과 보좌직원 또는 정당원들에 의한 국회폭력이 지속되는 이유들로 다음과 같은 점들을 들 수 있다. 첫째로 우리나라의 국회의원들이나 정치인들은 민주정치의 기본 원칙인 “다수결의 원칙”을 수용하지 않는 정치문화를 체질화하고 있는 점이다. 민주정치를 지향한다면서도 이를 위한 기본적 원칙을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정치인들의 정치문화가 바뀌지 않고는 우리나라에서 정치의 발전이나 개선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둘째로 국회에서의 폭력사태는 과거 권위주의정치가 행해지던 시기에 야당 정치인들에게 체질화되었던 투쟁적 정치문화가 민주화된 이후에도 변하지 않고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정치 시기에는 언제나 여당이 국회의석의 과반수이상을 차지하였고 여당은 다수의 힘으로 국회에서의 모든 결정을 밀어 붙였기 때문에 수적으로 열세인 야당에게는 불법적인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87년 이후 민주정치가 보장되고 여러 차례에 걸쳐 여소야대의 정국이 되풀이 되고 또 여당과 야당 간의 정권교체가 두 차례나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까지 여당과 야당사이의 쟁점이 협상과 타협이라는 의회정치의 상례적인 방법에 의해 해결되지 않고 권위주의정권시대의 폐습인 폭력에 의거한 해결방법이 그대로 유지되고 행해지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국회에서 국회의원들 사이의 폭력행위가 지속되는 원인의 세 번째는 국회의원들의 불법행위와 폭력행위를 국회의장이 처벌하지 않고 또 국회에 만들어 놓은 윤리위원회가 폭력행위를 주도하거나 가담한 의원들에 대한 징계결정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는 국회의원들의 정치문화에 자리 잡고 있는 동료의원 감싸기 의식과 국회의장의 욕 안 먹고 넘어가기라는 안일하고 무책임한 정치문화에 근거하는 것이다. 근래에도 <표 4>에서 보는 바와 같이 거의 매년 폭력사태가 반복되어 왔으나 국회 내에서의 폭력행위자나 불법행위자가 처벌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국회에서 국회의원들 사이의 폭력행위가 지속되는 네 번째 이유는 정당의 지도자들이 폭력행위에 앞장선 의원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행위를 영웅적 행위를 칭찬하고 보상하는 잘못된 정치문화 때문이다. 국회에서 정당간의 대립이 있고 내가 소속한 정당의 국회의원 숫자가 모자랄 때에는 수단과 방법을 불문하고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임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국회내 정당지도자들의 정치문화와, 이러한 국회의원들을 징계하는 것이 아니라 포상하는 정당지도자들의 정치문화는 국회의원들의 불법 행동을 조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역대 국회에서 폭력행위에 앞장서 전기톱, 쇠망치, 소방호스 등을 사용하여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국회기물을 파괴한 의원들은 모두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는 선례는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폭력행위에 앞장서는 것이 공천을 보장받는 길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체질화 시키는데 기여했다.
국회에서 폭력행위가 되풀이 되는 다섯 번째 이유는 국민들의 잘못된 정치문화 때문이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정당의 지도자들이 소속 국회의원의 폭력행위를 치켜세우고 공천 등으로 보상하는 잘못을 되풀이 할 때 이를 저지하고 재발을 못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유권자들이다. 유권자들은 이러한 폭력의원들이 다시 공천을 받아 출마할 경우 이러한 후보들을 응징하여 낙선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역대 국회의원선거의 기록을 조사해 보면 다수의 폭력의원들이 선거에서 다시 승리하여 국회에 돌아왔다. 제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법안 통과시에 최루탄을 던져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김선동 의원이 다시 당선되었다. 국민들까지 국회의원들의 잘못된 행위를 잘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들을 다시 선출해주는 정치문화가 계속된다면 국회에서의 국회의원들에 의한 폭력사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IV. 결론
지금까지 논의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민주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고 정치발전이 지체되는 근본적 원인은 국민들의 잘못된 정치문화 때문이다. 국민들 중에서도 정치를 주도해 나가는 정치인들의 잘못된 정치문화와 이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행태가 일차적인 원인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정치인들을 비난만 하는데서 끝나거나 정치인들이 스스로 알아서 잘해야 한다는 규범적 주장을 하는 것만으로는 우리나라 정치의 개선이나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 정치를 잘못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응징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자질을 갖추고 있고 이를 선거 때 행동화할 수 있는 정치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들의 잘못된 정치행태를 바꿀 것이지만, 국민들이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은 정치문화를 선거 때나 국회 및 국회의원들에게 계속해서 보여줄 때에는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정치행태를 지속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정치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주체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국민들이며 국민들이 먼저 민주정치에 합당한 정치문화를 체질화 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정치의 발전이나 개선은 이루어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