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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회 동덕여자대학교 편 - 한국 가족의 오늘과 내일

2014-09-29 16:12:10   , 1534 조회

written by 4월회

한국 가족의 오늘과 내일


일 시 : 2012. 10. 25(목) 15:30~17:30
장 소 : 동덕여자대학교
강 연 : 권용혁 울산대학교 교수
주 제 : 한국 가족의 오늘과 내일


1. 개인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개인과 가족의 관계가 보다 수평적·민주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강력했던 부권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사이의 위계적 질서도 약화되고 있다. 이는 가족의 구조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서, 직계가족이 극소수가 되고 핵가족 및 일인가족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가족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소통 방식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화와 더불어 가족 구성원들의 삶의 형태도 변화하고 있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일상적인 삶까지도 함께 공유했던 농촌공동체와는 달리 도시의 삶은 일터와 삶터가 분리되어 일터에서는 일 중심의 부분적인 인간관계만을 중요시함으로써 삶터에서는 어느 정도 익명성이 보장된다. 이처럼 사생활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사회적 삶은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인격적 대우를 자연스럽게 요구한다.
지식정보사회로의 변화는 이 양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사회적 삶에 있어서도 대면적 관계가 아닌 화면적 관계가 확산되면서 개개인은 더욱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없게 되며, 개개인의 사회적 관계성 자체가 매우 유동적인 네트워크형으로 재구성되어간다. 최근 들어 확장되고 있는 SNS 등의 인터넷 소통 방식은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공동체적 소통 방식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가족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가족공동체 구성원들도 사회적 관계의 변화에 맞춰 자신의 소통 방식과 정체성을 재구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가족 구성원들은 그 이전에 비해 보다 자유로워졌으며 평등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기능이 있다. 바로 가족은 아직도 개인이 길러지고 교육되는 일차적인 장소인 것이다. 가족이라는 일차적인 생활의 장에서 개인은 사회화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습득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국가가 개인의 사회화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전통 사회에서와는 매우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서구에서도 전통적으로 구분되어온 사적 영역으로서의 가족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서의 국가 영역이 상호 침투하고 있다. 교육, 의료, 노인 부양 등에 대한 국가의 개입으로 사적 영역의 일부분이 공적 영역과 밀접하게 연관되고 있다. 시장의 확대로 사적 영역 자체도 분리되고 있다. 가족은 더 이상 생산의 단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소비의 단위로 축소되고 있다. 생산과 판매 그리고 소비는 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시장이 가족뿐만 아니라 국가 영역에까지도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현대적 상황에서는 개인과 가족 그리고 시장과 국가가 복잡하게 상호 연관됨으로써 기존의 사적/공적 영역의 구분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고 있다. 국가의 개입으로 개인의 가족 구속성이 약화되고 개인보다 가족공동체를 더 중요하게 고려했던 전통이 심각하게 도전을 받고 있다. 국가가 가족 구성원인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까지 개입함으로써 가족공동체의 자율성이 더 이상 온전히 유지되지 못하고 있다.
가족 공동의 가치가 법률 및 국가의 개입으로 조정 받고 있다. 이로 인해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가 보다 수평적으로 변화함으로써 위계적 권위에 기초한 공동체적 결속력이 약화되고 상호 친밀성에 근거한 수평적인 관계 형성이 확대되고 있다. 이는 곧 개인과 가족의 개방화, 투명화 그리고 민주화 등과 연계된다. 따라서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가 재조정되고 있다.
더욱이 가족 철학을 논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바로 한국 가족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다. 서구에서 일반 이론화된 가족 철학 이론들은 한국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있기에 현실 분석의 적실성과 타당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의 경우 서구 가족 이론에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전통적 사유 방식인 유교적 가족관이 아직도 작동되고 있으며, 이로부터 파생된 문화적 요소들이 근대 이후의 가족제도와 규범 그리고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 사유 방식만 작동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시화 과정 속에서 개인과 개인주의 또한 자리를 잡아왔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국가가 사회적 안전망을 장기간 구축하지 않고 방기한 결과 개인은 가족 단위로 뭉침으로써 오히려 폐쇄적이며 강고한 가족주의가 근대화 과정 내내 재구조화되었다. 최근의 결혼 기피, 세계 최저 출산율 등은 가족에 전가된 이러한 사회적 과부하를 견디지 못한 결과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혼율 증가, 기러기가족 현상 등 세계적인 수준에서도 심각하고 독특한 가족 관련 문제들이 한국 가족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곳’을 중심으로 구성될 가족 철학 관련 논점들은 이러한 현상을 일차적으로 고려하면서 구체화, 심화되어야 한다. 가족 관련 이론들은 기초적으로는 이곳 현실의 심각성과 독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덧붙여 이를 세계적인 수준에서의 논의와 비교·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만 그 특이성과 일반성을 동시에 포괄할 수 있는 한국발 가족 이론이 새롭게 조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철학적으로 성찰하기 위해서는 한국 근대 가족이 처해 있는 현실과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해방 이후 한국 가족의 변천사는 일부분 그 이전 사회의 유산과 연결되어 있으며, 한국 사회의 역동적 변화와도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 게다가 현재 진행형인 한국 가족의 급격한 변화 양상은 지금까지의 역사 문화적 유산, 국가의 가족 방기와 개인의 적응, 물질적 풍요와 개인의 자유 및 행복 등과 연계된 매우 복잡한 구조로 얽혀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검토 결과 정리된 바는 개인의 위상이 가족공동체 안에서 지속적으로 결정되어왔으며, 개인이 가족 내부로 결속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상황이 근대 내내 전개됨으로써 대부분의 개인은 폐쇄적인 가족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개성을 유지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근대적 개인이 탄생하고 길러지는 기본 장소인 가족이 그러한 개인을 길러내지 못했으며 오히려 사회적 생존과 경쟁을 위해 폐쇄적 가족주의가 가족의 논리로 통용되어왔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전개 과정 내에서 형성된 개인과 가족의 관계를 토대로 한 철학화의 가능성은 어떻게 구상될 수 있을 것인가? 아직은 가설적이기도 하지만 설득력 있는 잠정적인 결론은, 서구 근대 이후의 철학에서 특히 현대 철학에서 더욱 당연한 기반으로 삼고 있는 ‘근대적 자아’, ‘근대적 개인’은 한국 근대사 속에서의 개인과 가족의 관계를 고려할 경우, 주류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개인과 가족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가족으로부터의 개인의 독립과 해방을 전제로 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로 보인다. 오히려 이 둘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시각이 서구적이라면, 한국을 둘러싼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이 둘 사이의 상보적, 복합적 긴장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그 철학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는 한국적인 특수성에 지나지 않는 사안이 아니다. 이는 동아시아 한중일 3국의 개인과 가족에 관한 비교 논의를 통해서도 확인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개인과 가족의 관계를 동아시아적 시각에서의 비교, 논의하는 것은 오히려 한국적 현상을 일반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여기서는 ‘한국발 가족 철학’이 가능하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이는 개인과 가족의 관계에 대한 한국발 재해석이 가능하며 이 재해석은 서구적인 것과 변별력을 갖는다는 점을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한국적 상황에서 정리된 가족 철학 이론은 오히려 서구와는 다른 근대화, 산업화를 겪고 있는 비서구 국가들의 가족 관련 상황을 해석하거나 이해하는 데 있어서 서구의 가족 이론보다 더 현실 적합성과 이론적 타당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비서구적 근대화, 산업화의 길을 걸어오면서 한국의 가족이 겪어온 바를 정리하는 것은 서구 가족의 중심 주제와는 다른 중심 주제들을 제시하고 이를 보다 적절하게 해석하는 시각을 제시하는 것을 뜻한다. 오히려 이러한 또 다른 길이 비서구적 상황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보다 설득력 있는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발 가족 철학은 그 특수성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실과 소통하는 철학함의 전형적인 사례로서 개인과 가족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회 철학적 개념 틀을 정립하는 것이기도 하며, 기존의 서구 이론 중심의 철학과는 다른 관점과 일반화된 이론을 보여줌으로써 세계적인 수준에서의 학문적 성과로 자리매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서구에서 근대적 개인의 탄생은 근대적 자아 및 자아 정체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전근대적인 위계적 공동체와 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구성된 유기체적 세계관이 비판되면서, 유기체적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개체들에 지나지 않던 개인들이 그러한 공동체의 구속성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유로운 개인으로 바뀌는 것이다.
데카르트적 사유하는 주체는 이러한 개인의 특징을 잘 대변하고 있다. 독립적인 개체로서 스스로 생각하는 자아는 외부의 간섭이나 제도 혹은 전통에서 벗어나 그것들을 자신을 중심으로 재구성해왔다. 이러한 사유의 주체로서의 근대적 자아는 근대적 시민들에 의해서 채택된다. 근대적 시민들은 토지를 중심으로 집단적으로 생산물을 생산해온 농업 사회에서 벗어나, 근대적 도시를 중심으로 생산품을 생산·유통·판매하는 활동을 함으로써 근대적 시장에 스스로 적응해갔다. 이러한 근대적 시민은 자신들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주체적 개인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즉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자아 정체성이 바로 근대적 시민, 근대적 개인을 대변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도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을 중심으로 재구성된다. 공동체란 개인들의 총합에 지나지 않게 된다. 즉 공동체와 사회는 개인으로 구성되며 그 관계는 개인들 간의 관계로 환원되는 것이다. 이러한 계약론적 논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로크의 이론이다.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독립적인 존재로 파악하기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 건강, 자유, 또는 소유물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가지며, 이에 대한 침해를 피하기 위해 그 일부를 이양해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는 기구인 국가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부모는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서로 평등하며, 자식도 성년이 되면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으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로크는 부부도 남자와 여자 사이의 자발적인 계약에 따라 형성된다고 봄으로써 계약 파기에 의해 헤어질 자유도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로크, 『통치론』, 강정인·문지영 옮김, 서울: 까치, 1996: 11. 13. 80 참고).
이러한 그의 사상의 기본에는 인간을 자유롭고 평등하며 독립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인간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근대적 시민, 근대적 자아의 특징을 대변하는 인간관이며 가족은 바로 이러한 개인들로 구성된 공동체이다. 그에 따르면 가부장은 구성원의 생사여탈권을 갖지 못하며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처럼 위계적이며 전제적인 권력을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로크는 이처럼 가족에 있어서도 위계적 관계나 가부장권을 제한함으로써 가족이나 그보다 더 큰 결사체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개인의 권리를 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자유주의 계약론을 전개한다. 그러나 이렇듯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권리를 기초로 한 자유주의적 계약론에 있어서는 결혼을 계약관계로 한정함으로써 결혼 당사자들 사이의 정서적 교감이나 사랑과 배려 혹은 친밀성과 같은 내밀한 상호 관계가 결혼과 가족 정체성 형성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이러한 계약론적 설명을 벗어나 이성 간의 자연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가족과 결혼을 설명하고자 한 철학자가 헤겔이다. 그에 따르면 가족에서는 그 구성원들의 상호 배려와 사랑의 감정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그 구성원들 개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존중하고 수행하는 일은 그 이후에 수반된다. 가족이 개별자의 권리라는 형식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구성원들의 사랑을 자기규정으로 한다는 것은 가족 내에서의 구성원들의 개체성이 자기의식을 즉자적이며 대자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헤겔, 『정신현상학』, 임석진 옮김, 서울: 한길사, 2006: 26 참고).
가족 구성원 사이의 사랑은 고립적인 개별자를 뛰어 넘은 것이다. 가족 구성원은 나와 다른 구성원인 타자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의 개체성을 버리고 타자와 합일을 이룬다. 이 합일을 통해 개인적 개체성이 가족으로 통합된다. 사랑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즉 사랑은 가족 구성원들을 상호 자연적인 감정의 합일을 기반으로 하나로 만든다. 이 하나 됨은 개체 중심적인 계약론적 단계의 상호계약과는 다른 것으로서 개인들은 가족 안에서 하나로 통일된다.
두 인격적인 개체는 결혼을 통해 하나로 통합된다. 결혼은 두 인격적 개체의 법적 독립성을 폐기하고 법의 테두리를 넘어 보다 높은 수준의 자유의 획득을 가능하게 한다. 헤겔의 결혼은 법으로 뒷받침되는 인륜적인 사랑이기에, 결혼을 시민 상호 간의 계약으로만 파악하는 근대 계약론적 결혼관과는 다른 것이다. 결혼은 자연적이며 독립적인 여성과 남성이 그 개체성을 뛰어 넘게 하며 보다 높은 정신적이며 자각적인 사랑을 매개로 이 둘을 합일시킨다. 헤겔은 일부일처제를 옹호하는데, 그 이유는 결혼을 통한 둘 사이의 일체성 확보는 인격체 상호 간의 헌신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결혼 당사자들이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서로 합일하는 것은 인격체 상호 간의 헌신을 통해서 확보되는 혼연일체로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일체성은 서로가 함께하는 경우로 한정되기에 일부일처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헤겔, 『법철학』, 임석진 옮김, 서울: 한길사, 2008: 334 참고). 이 과정에서 부부는 공동재산을 통해서 외적인 통일을 이루며, 부부 사랑의 감정은 자녀를 통해서 실체적으로 통일된다. 부모는 자녀를 통해서 자신들의 합일된 사랑을 목도한다(헤겔, 『법철학』, 2008: 339 참고). 이처럼 공동의 재산과 자녀를 통해 가족은 즉자대자적으로 완성된다.
헤겔은 사랑으로 합일된 부부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일부일처제 핵가족을 가족의 기본단위로 삼았는데, 이는 고대 이래 지속되어온 가족관과는 다른 것이다. 그 이전의 가족은 생산과 소비가 함께 행해지는 공동체였으며, 가장인 남성에게만 권한이 부여되어 자녀들은 재산적 가치를 지닌 비자립적인 존재로서 재산법의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반면에 헤겔이 구상한 가족은 근대적인 시민의 평등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 시민적 가족이었다. 부부간의 평등한 사랑을 바탕으로 자식들이 자라나며 자식들이 성장하면 스스로의 자유의사에 따라 또 다른 가족을 형성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헤겔은 일부일처제를 기반으로 하는 소규모 핵가족을 가족의 모델로 삼고 있는데, 그 안에서는 결혼한 남녀가 역할 분담을 한다. 가족 내에서 여성은 육아와 가사를 통해 자신의 본능적 감성을 발달시키고 남성은 사회에서의 노동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며 사회적 격무로부터 돌아와 가정에서 휴식을 취하는 산업사회 핵가족의 남녀 역할 분담을 전형으로 삼고 있다(헤겔, 『법철학』, 2008: 337 참고).
사랑을 바탕으로 남녀가 역할을 분담한 일부일처제 핵가족을 전형으로 삼고 있는 헤겔의 가족은 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계약론에서의 가족이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 사이의 계약에 의거해서 성립하는 개인들로 구성된 공동체라고 한다면, 헤겔의 가족은 이러한 개인들이 사랑을 바탕으로 자신의 개체성을 버리고 나와 타자가 서로 타자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보다 질적으로 고양된 공동체다. 이러한 발견을 통해 가족 구성원 각자는 개별적 인격체로서의 한계를 뛰어 넘어 하나로 결합하며, 상호 간에 가족 구성원으로서 일체성을 확보함으로써 합일의 상태에 이른다. 따라서 헤겔에게 가족이란 개인의 집합이 아니다. 개인은 가족 내에서 사랑을 기반으로 새로운 공동체적 자아로 재탄생한다. 이러한 합일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은 나와 타자를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오성적 단계로는 파악 불가능하다. 이 사랑은 상호 이성적인 합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상호 자연적인 감정의 합일을 통해서 하나가 되게 하는 힘이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가족이 자연적인 사랑의 감정에 의거해 있는 ‘자연적인 인륜 공동체’인 것이다(헤겔, 『정신현상학』, 2006: 26 참고).
근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시장은 개인 간의 경쟁을 기반으로 하지만, 가정은 구성원들에게 파트너를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하고 가족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도록 강요한다. 가정에서의 개인은 로맨틱한 사랑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희생하고 가족에 헌신할 것을 요구받는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은 가족공동체 안에서는 타자에 대한 헌신과 사랑으로 변경된다. 사랑이 개인의 개별 정체성을 폐기하고 합일이라는 명분하에 성별 역할 분담을 영구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산업사회의 자연적인 인륜 공동체의 실체이다. 이것은 여성과 남성의 성별 차이에 기초한 가정 내에서의 역할 분담을 당연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사회적 삶과 정치적 삶은 남성이 주도하기 때문에 시민사회와 가족이 구분되며 가족 내 여성의 역할은 시민사회에서의 정치적인 삶을 보조하는 영역으로 한정된다. 여자들은 결혼 후 가정을 보살피기 위해 공적인 삶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는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삶과 가장으로서의 가정의 삶을 구분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의 근대적 변형이다. 그것은 자연과 문화의 이원성에 근거해 있다. 그 저변에는 아이의 출산과 양육을 전담해온 여성은 생물학적 본능과 관련된 자연적인 지식에 충실해왔으며, 남성은 자연적 기능이나 본능이 작동되는 가정 영역으로부터 가능한 한 자신을 분리시킴으로써 진정한 인간적 삶과 진정한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남녀역할 구분법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남성의 보다 고차적인 정치적인 삶을 위해서 가정은 그것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기반으로 기능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라는 공적인 영역과 가정이라는 사적인 영역을 구분하고 정치를 위해 가정을 도구화하는 공화주의적 논점의 기본 구도다(킴리카,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 서울: 동명사, 2008: 539~540 참고).
시민적 자유는 공적인 영역에서만 작동되기 때문에 가정이라는 사적인 영역은 그러한 공적 영역에서의 정치적 참여를 위한 육체적, 정서적, 본능적 충족의 장소일 뿐이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적 입장은 자유주의적 입장과 대립한다.
개개인의 자율성과 기회의 평등을 일관성 있게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은 가족을 사적 영역의 핵심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가족은 사적 영역이며 그 사적 영역을 공적 영역과는 다른 사생활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논점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이분법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자들이 자신의 논점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간다면, 가족 구성원들의 자유와 평등을 더 중시할 것이고, 따라서 사적 영역에서도 공적 영역에서처럼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즉 일관성 있는 자유주의자들은 사적 영역의 핵심을 가족에 두지 않고, 오히려 개인에게 둘 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논점은 가족을 사생활의 기본단위로 간주해왔던 전통적 사고와는 구별된다. 가족의 집단적 사생활을 기본단위로 하면, 가족 내에서의 개인의 사생활은 가족의 집단적 사생활에 종속된다. 이는 가정을 이상화하는 헤겔식 낭만주의적 이상이자, 아리스토텔레스적 이분법의 연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가족의 집단적 사생활보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사생활을 보다 중시한다. 이는 가정의 영역에서도 공적인 영역에서처럼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며 사회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가족에 있어서도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논점을 취하게 된다(킴리카,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 2008: 548 참고). 최근 서구에서 일반화된 가족 구성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가족에의 개입은 자유주의적 맥락에서는 긍정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어쨌든 현대사회에서는 사회적 노동의 형태가 육체노동에서 정신노동으로 이중에서도 고도의 정신노동으로 변화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기능적 구분이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자연적 기능과 사회적(문화적) 기능을 성별에 따라 고착시킬 수 없는 사회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로 공적 영역에 참여하는 시민을 남성으로 국한시킬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그러한 정신노동은 개인화되고 다기능화되면서 특정한 성의 역할에만 의존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가족에서의 성별 기능이 변화하고 있으며 가족 구성원 간의 사랑의 내용도 달라지고 있다. 부부가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이 개인의 개체성을 버리고 타자와의 합일을 통해 새롭게 합일된 정체성을 획득하는 것이라는 헤겔식 사랑 개념이 현대적 상황에서도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현대인에게 결혼이란 상대방의 자유와 자아실현 계획을 상호 인정하면서 상호 배려하는 형태를 띠지 않고서는 그 성공 확률이 낮아질 뿐이다.
이제는 이러한 변화된 상황에 걸맞은 가족관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사회적 노동은 더욱더 합리화되어 개인별 측정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적 삶도 보다 개인화되어가고 있다. 개인들은 특정한 공동체의 목적 수행보다 자아실현을 더 중시하고 있으며 사랑과 결혼에 있어서도 개인의 자아실현 프로그램을 핵심적인 것으로 고려하고 있다. 따라서 산업화 시기의 전형적인 결혼과 가족을 고수하거나 복원하려는 시도는 현실적 적합성을 갖기 어렵다. 개개인은 오히려 공적인 영역에서건 사적인 영역에서건 자신의 자율성과 평등 그리고 자아실현을 우선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1970년대 이후 핵가족이 더 이상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다. 결혼 혹은 동거도 선택의 문제이며 자녀 갖기 유무나 혼외 자녀 갖기도 마찬가지로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또한 이러한 선택을 자아실현이나 직업 유지 여부와 관련해서 결정하는 사람이 늘어만 간다. 이제는 그 이전의 사회적 규범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가족이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가족과 결혼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 내용은 달라지고 있다. 가족의 정서적 교감과 친밀성은 유지되고 있지만, 성별 분업이나 자아실현의 포기 등은 변경되고 있다. 남녀 모두가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되면 부부의 역할 분담은 재조정될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 성별 분업이 강요되면 결혼이 유지되기 어렵다. 혼인이 줄고 출산율이 줄거나 홀로 사는 개인이 증가하는 것도 이것과 연관되어 있다.
일과 삶에 있어서 개인화와 자아실현이 증가하면, 그에 따라 개인도 변화해야 한다. 개인화된 사회에서는 가족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인생의 중심축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은 각 개인의 자유와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회적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즉 개인이 사회적 존재로 남아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여건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방식이 제안된다. 이 책 2장 3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벡은 사랑으로부터 관계로의 이동을, 기든스는 친밀성에 기반을 둔 민주적 관계와 당사자들의 내부준거 체계의 구성 가능성을 주장한다(벡, 『사랑은 지독한 혼란』, 강수영 옮김, 서울: 새물결, 2002: 145; 기든스,『질주하는 세계』, 박찬욱 옮김, 서울: 생각의 나무,  2000: 125~127; 기든스,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배은경·황정미 옮김, 서울: 새물결, 2003: 14 참고). 이러한 가족 구성원 간의 수평적, 민주적 유대는 시민적 덕성을 기르기 때문에 가족이 사회적 통합의 기초가 된다. 이를 통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연결된다. 이제는 사적 영역에서 작동되는 민주적 관계가 공적 영역에서의 민주적 요구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역도 동일하게 수행되고 있다. 감정과 정서의 생활 영역인 가정에서의 민주화는 형식적 합리성에 따라 의사소통되는 공적 영역에서의 상호 관계를 성찰적으로 재구성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사적 영역에서의 정서적, 수평적 유대를 강화하면 개인이 보다 성찰적으로 다른 가족 구성원과의 협력적 유대와 신뢰를 확보하게 된다.
가족 내에서의 친밀성을 기반으로 한 관계 중심의 사고를 철학사적으로 재해석한다면 다음과 같다.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개성과 자아실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친밀성을 기반으로 상호 솔직한 의사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의 문제에 공동 대처해나가는 이러한 모습은 계약론적 맥락에서 제기되듯이 가족이 개인의 권리로만 구성된 것도 아니고, 헤겔에서처럼 가족공동체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매몰되어 자신의 개성과 자아실현의 장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구성원들의 개성과 자아실현이 상호 인정되고 상호 배려되면서 관계가 민주적으로 유지되며 이를 바탕으로 공동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전형적인 민주적 공동체의 모습을 띠게 된다.
이처럼 가족공동체에 있어서 민주적 의사 결정과 개인의 자아실현이 조화를 이루면, 기존의 사적/공적 영역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일상생활에서 작동됨으로써 민주주의의 일상화, 내실화를 가져오며, 이를 바탕으로 공적 영역에서의 민주주의가 강화되는 상호 협력 관계로 변경된다. 이러한 서구의 모습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개인과 가족 그리고 시민사회가 공적인 영역에 참여해 변화된 환경 속에서 자기주장을 관철시킨 결과물이기도 하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부과되었던 부담을 사회와 국가가 덜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2. 한국의 가족 그리고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이런 서구적 맥락과 논점을 우리 사회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명확해진다. 한국 사회에 있어서는 비록 이혼은 늘고 있지만 아직도 친부모와 사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혼인하지 않고 사는 동거가족이나 동성애가족 등이 존재하지만 그 사회적 영향력은 서구에 비해 미약한 상태다. 오히려 가족 내에서의 가장의 권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자식은 자유롭고 평등한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대화는 부모 중심의 일방적인 소통 형태가 주류이며 자녀들은 훈육의 대상이자 보호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이런 점에서 서구적 논의를 한국의 가족에게 적용하기에는 그 격차가 너무 크다. 오히려 한국 가족의 경우에는 전근대적, 근대적 그리고 현대적 가족의 형태가 혼재되어 있다. 이는 전통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그리고 지식정보사회로의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현실에 적응하면서 대응해온 다양한 가족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의미한다. 현 단계에서는 1980년대에 형식적 민주화가 정착된 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의 실질적 민주화가 진행 중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족도 실질적으로 민주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한국 가족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역동적으로 변화해왔기에 그만큼 독특한 현상을 많이 가지고 있다. 양육과 교육, 의료, 노후 등에 국가가 개입함으로써 가족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는 있지만, 자녀의 교육비 부담은 줄지 않고 있다. 가족 내에서의 성에 따른 역할 분담이 존속되고 있고 부권으로 상징되는 가족 내 권위주의가 상당 부분 남아 있다. 자녀의 결혼이나 결혼 후 결혼 생활에 개입하는 경우도 많다. 가정에서는 효를 강조하고 부계 중심적 친족 관계를 중시한다. 게다가 폐쇄적이고 결속력이 강한 가족 중심주의가 강하게 남아 있다.
한중일 3국 가족 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가족은 집합주의와 개인주의, 권위주의와 평등주의 등의 가치관이 복합적, 중첩적으로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특정한 가치가 다른 가치를 억누르거나 지배하는 방식은 문제를 증폭시킬 수 있다. 오히려 가족 구성원 간의 세대별, 성별 차이에 대한 상호 이해와 인정이 이루어진다면, 구성원 사이의 열린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한국 가족에서 민주주의가 역동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한국 가족은 가족 구성원들이 이러한 혼재 상황을 충분히 감지하고 있으며 경험적으로 세대 간, 연령 간, 성별 간의 차이를 체험해왔기에 그들 간의 상호 인정과 이해 그리고 배려 등이 오히려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가족 구성원들이 체험 속에서 얻은 상호 공존의 지혜를 성찰적으로 이어간다면, 그만큼 한국 가족에서는 민주주의가 역동적으로 실행되고 정착될 확률이 높아진다.
이를 한국 근대사회의 역동적 변화 과정과 연계해 좀 더 심도 있게 살펴보자. 20세기 중반 이후 겪어온 한국 사회의 역동적 변화가 가족 가치관의 변화에도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는 세대별 주도권 변화에 따른 주도적 가치관의 변화로 이어질 것임을 우리는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근대 내내 체험해온, 농업 사회의 유교적 전통을 고수한 아버지 세대의 주도적 가치관이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도시 핵가족형 가장에게로 주도권이 넘어온 것을 체험한 현재의 주도 세대는 이러한 사회의 역동성을 성찰적으로 고찰할 경우 자신의 가치관이 빠르게 약화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자녀 세대의 가치관이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금 주도적 가치관에서 밀려나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주도권의 역동적 변화를 성찰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현재의 주도 세대는 자신에게 익숙한 특정한 가치관만을 주도적 가치관으로 고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는 스스로 사회의 변동에 따른 사회적 가치관의 변동을 체험해왔으며, 가족 가치관의 변동 역시 이러한 과정을 겪으리라는 것을 성찰적으로 파악함으로써 다양한 가치관을 상대화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도 현재의 도시 핵가족을 이끌고 있는 주도 세대는 그의 부모와의 관계에서는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고 있으며 같은 동년배들과의 사회적 관계에서는 연고 중심의 폐쇄적인 공동체주의적 가치관과 능력 위주의 수평적인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경우에 따라 복합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또한 가족 구성원과의 의사소통에 있어서도 상황에 따라 권위주의적이거나 민주주의적인 면을 강조하는 다양하고 혼성적인 복합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만큼 현재의 주도 세대는 특정 가치관만을 고수하지 않고 역동적 사회의 변화와 그 중첩성의 층위에 따라 다양한 복합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부모 세대의 경우도 더 이상 자신의 가치관이 사회에 있어서나 핵가족화된 자식의 가족에 있어서나 주도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또한 그의 자식 세대도 부모 세대의 권위를 인정하고 폐쇄적 가족주의의 혜택을 받아왔기에 개인주의적인 가치관만을 고수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가족 구성원들은 사회의 역동성과 이로 인한 전통과 근대 그리고 현대의 혼성화와 이것들 사이의 상호 영향 주고받기를 통해 형성된 복합적인 현실 상황의 전개를 일상적인 삶 속에서 체험함으로써 특정 가치관만을 고수하지 않고 다양한 가치관을 성찰적으로 상대화해왔다. 이는 역동적인 사태 변화 속에서 일종의 복합 성찰성을 길러왔으며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전략을 일상적으로 작동시켜왔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가족 구성원 사이의 세대별, 성별 차이에 대한 상호 인정이 전제된다면 복합적 사태에 대한 복합적 성찰성에 기반을 둔 열린 대화가 보다 수월하게 작동될 수도 있다. 한국 가정에서 민주주의가 역동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는 구성원들이 이러한 혼재 상황을 충분히 감지하고 있으며 세대 간 성별 간 차이를 사회의 역동적 변화 속에서 함께 체험함으로써 구성원들 간의 상호 인정과 이해 그리고 배려 등의 덕목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복합적 성찰성에 의거해서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 열린 대화가 한국 가족에 정착될 때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사회의 민주주의도 함께 논의할 수 있다. 가족 내에서부터 민주주의적인 소통 양식을 습득한 개인들만이 민주 시민으로서 시민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집단들의 비타협적 대결 국면이나 이해 상대방 사이의 격렬한 대치 상황이 깊은 수렁으로 빠지지 않고 결국에는 보다 나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도 사회적 공론장에 참여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이러한 복합적 사태에 대한 복합적 성찰을 수행함으로써 보다 나은 대안을 모색해왔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역동적 사태 변화에 대해 지혜롭게 대처해왔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한국 가족이 그들에게 주어진 복합적인 사태에 대해서 복합적으로 성찰하고 복합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던 그 독특성은 한국 사회의 역사적 상황과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발생한 전통적 가족 문화 및 가치관의 변형과 근대적 가족 문화의 이식 그리고 역동적 근대화 과정 속에서 창출된 한국 가족주의의 독특성 등이 중첩적이며 혼성적으로 섞여 있는 사태는 서구의 단선적 변화에 비하면 복잡하고 비정형적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지속된 전근대적인 전통 공동체가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식민지 종주국의 외적 강압에 의해 변형되었다. 식민지로부터의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은 형식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통 공동체의 가치 및 생활양식이 변형된 채로 유지되었다. 따라서 이념적으로는 서구적인 것이 도입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전통적인 것이 작동되는 혼성적인 상황이 지속된다. 한국전쟁 시기 이후뿐만 아니라,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도 전통적인 것이 한 축을 이루면서 변형된 상태로 지속, 유지되었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가족주의나 공동체적 유대감뿐만 아니라, 국가 주도의 근대화나 국가의 권위주의적인 통치, 사회조직에 있어서의 수직적인 위계 관계,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연고주의의 상존 등을 전통 공동체의 규범과 원리가 변형된 형태라고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전통 공동체의 원리 및 규범이 직·간접적으로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한국의 상황에서도 이러한 전통 공동체의 유산은 변형된 채로 지속된다. 앞에서 보았듯이, 개인과 가족의 관계를 고찰할 경우, 가족 내부에서는 개인보다 가족주의의 가치 및 가족공동체의 유대 관계가 훨씬 강하게 작동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중일 3국의 가족 비교에서도 매우 독특한, 한국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는 전통 공동체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이 섞여 있어, 현실은 중층적, 혼성적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서구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시각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면서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서구의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설정과는 달리 한국 가족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개인들은 자유주의적이지도 개인주의적이지도 않다. 그들은 서구에 비해 매우 공동체주의적이다. 특히 근대 이후 강화된 가족주의는 비정한 사회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터전으로 작동해왔기 때문에 강한 내부 결속력을 갖춘 강고한 폐쇄적 공동체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 폐쇄적이며 내부 결속력이 강한 공동체 내에서는 개인이란 그 구성원으로서 존재한다. 그 속에서는 공동체의 목적과 가치가 우선하며 그는 공동체 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기능과 역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수행하는 일부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체득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가족 구성원은 너무나 공동체주의적으로 뭉쳐 있다. 가족뿐만 아니라 지연, 학연 등의 연고주의도 가족과 유사한 공동체주의의 특성을 갖추고 있다. 이것들 역시 내적 응집력이 강한 배타적이며 폐쇄적인 공동체의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기보다는, 이처럼 내부 결속력이 강한 폐쇄적인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공동체들이 도처에서 개인들의 삶을 주도하고 있다.
서구의 공동체주의자들의 주장도 일면 옳다. 한국의 개인은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품성을 공동체적으로 기르고 체화해왔다. 그런 점에서 개인은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다. 그는 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그 공동체에서 정해진 위계 구조에 따라 위치가 정해진다. 개인의 정체성은 그 위계적인 공동체 내에서 길러진다. 이런 점에서 개인이 홀로 독자적인 판단과 결정을 통해 이 공동체를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한국의 공동체들이 일면 공동체주의적이지만 개방적이거나 수평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이는 서구 공동체주의의 부정적인 모습과 맞물려 있다. 집단적 가치가 중요시되면, 그 집단 구성원의 자유와 자율이 보장되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 중심주의가 과잉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발달하지 못한 측면은 바로 이러한 공동체주의가 갖는 부정적인 모습이다. 개인은 항상 가족 안에서, 가족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수평적인 개체 중심적 개인이 발달하지 못했다.
한국 사회는 이런 점에서 오히려 과잉 상태의 내부 결속력이 강한 폐쇄적 공동체들을 약화시키고 그 구성원들을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유하고 행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족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가족이라는 폐쇄적이며 위계적인 공동체 내에서 사회적 존재로 길러지는 구성원들이 보다 자유롭고 개성 있는 인격체로 육성될 필요가 있다. 폐쇄적이며 내부 결속력이 강한 공동체의 형태에서 벗어나 외부에 대해 열려 있고 내부적으로도 유연한 그러한 열린 공동체가 현실 가족공동체의 모습으로 자리 잡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열려 있는 유연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폐쇄적이며 내부 결속력이 강한 공동체의 부정적인 모습을 가장 효율적으로 개선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공동체 내에서 사회 존재론적으로 이미 규정된 개개인의 정체성은 공동체의 화합과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그러한 공동체의 정체성만으로는 그 공동체가 지양해온 공동의 가치에 내포된 폐쇄성과 강고한 결속력을 교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규범적 기준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자들이 설정한 개인의 권리 및 자유 우선성의 원리를 특정한 공동체의 목적과 가치보다 규범적인 차원에서 우선시하려는 의도도 바로 이러한 특수 공동체에 내포된 부정적인 측면들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성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 둘이 상호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3. 가족의 다양화와 열린 공동체주의

그렇다면 한국의 가족이 열린 공동체의 모습을 띠는 것이 가능한가? 이 문제에 답하기 이전에 서구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한계를 정리해보자. 앞 절에서의 논의에 따르면 서구의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의 대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직 자유주의를 보완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동체주의는 사회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자아의 특수한 공동체 의존적인 정체성 해석과 도덕 인식론적인 차원에서의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가치 및 권리 설정이라는 두 영역을 구분해서 논증하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린 공동체의 형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자유주의적 논점이 전제하고 있는 개체 중심적 혹은 주관주의적인 개인의 규범과 가치를 상호주관적인 차원에서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은 공동체로부터 동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개체가 아니다. 개인은 원래부터 사회적 개인으로 태어나며 그때부터 특정한 공동체 내에서 길러지고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러나 개인은 특정한 공동체의 가치만을 습득함으로써 그 공동체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다. 개인은 타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과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를 성찰함으로써 그 한계를 넘어서서 보다 나은 공동체를 구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모든 개인이 사회적 개인이라는 사실에 있다. 나는 사회적 존재이며 이런 한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함께하는 존재이다. 나는 언제나 타자와 함께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주관적인 존재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타자가 있어야 하며 타자도 자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다른 타자들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모두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주관적인 존재이다.
이것은 주체-객체-차원에서 수행되는 모든 의사소통적인 상호 행위가 주체-주체-차원에서의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철학적 논점을 통해 정당화된다. 우리가 주체-객체-관계라는 틀 안에서 어떤 것을 어떤 것으로 인식하는 행위는 이미 어떤 것에 대한 이해의 주체-주체-관계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객체 연구의 밑에 깔려 있는 상호주관적인 이해를 통해서 우리는 언어적으로 매개된 의사소통과 그 공동체라는 개념에 도달한다(권용혁, 『이성과 사회』, 서울: 철학과 현실사, 1998: 1장 참고).
이러한 상호주관성을 바탕으로 열린 공동체의 이념형을 그려볼 수 있다. 공동체주의자들이 자아 형성의 현실적인 출발점으로 보고 있는 실재하는 소규모 공동체의 문제점은 이러한 공동체 내에서 작동되고 있는 가치나 규범이 그 공동체 내부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공동체를 벗어나서 그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보편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이념을 구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철학적인 차원에서는 인류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상정하고 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권리와 의무를 논리적으로 구상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의사소통 공동체 이론이 추구하는 법칙론적인 근본규범과 공동체주의가 내세우는 삶이 추구해야 할 목표로서 제시되는 가치들 사이의 관계를 화해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세계화 시대에 인류가 공존하면서 함께 삶의 목표로서 추구해야 할 덕목들을 구성해야 하는 현 단계에서는 더욱더 이 둘 사이의 관계를 보완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다문화 가정을 그 예로 들어보자. 한일·한중 다문화 가정은 특정한 국가, 특정한 문화, 특정한 혈통만으로 구성된 단일 공동체가 아니다. 상호 그 역사적, 문화적 맥락이 다른 가치들이 한 가족 안에 함께 공존하고 있다. 다른 삶의 맥락 속에서 형성된 특수성에 의거한 차이는 실질적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중 하나의 특정한 공동체의 가치만을 우선적인 것으로 주장하고 관철시키고자 한다면, 이 다문화 공동체는 유지되기 힘들다. 한 가족이 최소한의 공유를 바탕으로 한 결속력과 친밀성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개개인의 가치관과 문화의 차이에 대한 상호 인정과 이해가 필수적이다. 차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차이의 상호 공유가 이루어지며 그 공유를 기반으로 공동체적 연대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열린 가족공동체는 자신들의 규범과 가치가 다른 가족 구성원이 자라면서 습득한 특정한 규범과 가치와 차이가 나거나 상충될 경우 특정한 하나의 규범이나 가치를 채택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 둘의 차이를 인정한 바탕 위에서 보다 합리적인 해결책을 함께 만들어갈 것이다. 특히 심각한 충돌이 발생할 경우는 보다 성찰적인 차원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 혹은 중국에서 형성된 규범과 가치를 상대화하고 오히려 보다 타당한 규칙들을 함께 만들어갈 것이다. 특히 그 자녀들의 경우 두 문화의 혼성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다 성찰적인 차원에서 자신들의 삶을 바라보게 된다. 그 결과 그들은 두 문화의 장점을 함께 습득하고 단점을 최소화화는 전략을 선택할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특정한 공동체의 규칙만을 고집해서는 성공하기 힘들다. 오히려 이 두 문화의 규칙보다 더 나은 규칙을 성찰적으로 함께 구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 전략이 채택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에는 실재적인 규칙을 넘어서서 보다 이상적인 규칙을 성찰적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노력이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특정한 공동체의 가치를 성찰적으로 재구성하는 열린 공동체주의의 모습이 구체화된다. 공동체주의가 특정한 공동체의 전통으로 회귀하지 않고 보다 타당하고 정당한 의미를 함께 구성하는 단계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현실적인 다문화 가정의 문화적 혼성성, 중첩성을 인정하고 이 혼성성과 중첩성을 기반으로 보다 성찰적으로 열린 공동체적 규칙들을 함께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현실 사례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가족 내에서도 특정한 사실성과 특정한 규범과 가치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통해 그 구성원들이 역사적, 경험적 제약에서 벗어나, 논리적으로 상정할 수 있는 무한한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한 가족공동체 내에서도 보편적인 논의 구조를 통해 열린 공동체의 모습을 구상할 수 있다. 가족 내에서 가족을 통해서 열린 공동체의 모습을 구상하고 그것이 지니는 타당성과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도 공동체를 이렇듯 실재하는 공동체와 이상적인 공동체라는 이중 구조로 구분하고 이 둘 사이의 상호 보완관계를 설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이러한 이념형으로서의 보편적인 열린 공동체 이론은 가족공동체의 분석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서구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가 갖는 한계를 보완하고 이 둘을 보다 성찰적인 차원에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열린 공동체 이론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다시 한국의 가족공동체의 문제를 고찰해보자. 근대화 과정 속에서 내부적으로는 응집력이 강하고 외부적으로는 매우 폐쇄적인 특성을 강화해온 한국의 가족은 서구의 공동체주의와 비교할 경우 그것보다 훨씬 더 공동체주의적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가족 구성원은 20세기 내내 개인주의적이지도 자유주의적이지도 못했다. 특히 산업화 이후 도시로 이동한 개인들 및 이들로 구성된 도시형 핵가족은 가족주의 안에서 가족주의를 통해서 생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농촌에서 습득한 유가적 가족주의 문화의 영향으로 계약론적이거나 개인주의적인 상호 관계에 익숙하지 못했다. 그들은 오히려 사회에서는 개인으로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가족공동체 내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전체의 일부분으로 기능해왔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가족은 자유주의적이지도 공동체주의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그들은 경쟁이 심한 일터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최대한 앞세우는 도시민이었지만, 삶터이자 휴식처인 가정에서는 유교적 가족관과 가족주의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특성을 부분적으로 소유하면서 때와 장소에 따라 스스로의 입장을 채택하는 혼성적, 중첩적인 자아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가족에서 위계적 구조와 수평적 구조, 자유주의적 개인과 공동체주의적 구성원 의식이 개개의 구성원에게 공존해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혼성적, 중첩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우리에게 주어진 독특한 혼성성, 중층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혼성성의 내용 변화를 추적하고 이 변화 속에서 하나의 모델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가족 내에서의 규범과 가치의 혼성성도 시대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고 있다. 1960년대 까지는 유교적 가족관과 일제에 의해서 이식된 가족관 그리고 해방 이후 도입된 자유주의적 가족관이 혼재되어 있었다. 추상적인 차원에서는 근대적 가족관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었다. 1980년대까지 도시형 핵가족이 등장하고 이 핵가족 구성원들은 직계가족적 가치와 핵가족적 가치를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해왔다. 1990년까지도 한편으로는 직계가족의 원리가 기능하면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핵가족적 원리가 형성되었으며 비이념형인 제3의 경향 등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점차 부부 중심의 핵가족이 증가하고 직계제가 약화되었으며 독신 가구, 비혈연 가구와 같은 준가족적 형태가 늘고 있다. 가족 의식에 있어서는 그럼에도 직계가족 관계에 바탕을 둔 의식 및 가치관이 변형되어 현실적으로 작동되고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자유주의적인 개인주의가 중심에 서지 못하고 가족주의가 근대화와 상호 긴장 관계 속에서 강화된 측면이 있는데, 이는 개인들이 가족적 유대와 결속을 통해 스스로 안전망을 확보해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족 중심성은 1990년대 이후도 지속·강화된다. 오히려 가족 중심성이 사회적으로 확대되어 한국 근대의 핵심적 특성 중 하나가 되었다(장경섭, 『가족·생애·정치경제』, 서울: 창작과 비평, 2009: 293 참고). 근대화 과정에서 국가는 유교적, 도구주의적, 서정주의적, 개인주의적 가족 이념 등을 경제적 동원을 위해 이용함으로써(장경섭, 2009: 303 참고) 한국의 가족은 이질적이면서 상호 모순적이기까지 한 혼성적, 중첩적인 규범과 가치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한국의 가족은 항상 국가 동원 체계의 일부분이었으며 국가 기능의 일부를 수행해왔기에 국가라는 공적인 영역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고 경계 짓는 사적인 영역일 수 없었다. 오히려 가족이 준공적인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국가 단위의 경제적 동원의 토대로서 기능해왔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가족은 서구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라는 이분법적 구분 도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서구 복지국가는 전통적으로 가족이 담당해온 기능을 사회화, 제도화함으로써 가족공동체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그 구성원 개개인의 권리와 자율성 그리고 평등을 보장하는 차원으로 가족 관련 논쟁의 논점을 이동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한국의 가족에서는 강화된 가족 중심주의를 약화시키고 상호 모순적이기까지 한 혼성적이며 중첩적인 가족공동체의 규범과 가치를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재구성은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공동체적 결속력을 유지하면서도 민주적 연대를 바탕으로 차이에 대한 상호 이해력과 성찰적 해결 능력을 길러야 순조롭게 달성될 것이며, 이것을 위해서는 구성원 개개인의 자율성과 평등이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가족 구성원들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서로 수용하는 가족의 민주화는 폐쇄적인 내부 결속력만을 강조하는 한국의 가족공동체를 그 공동체 이외의 타자들에게도 개방하고 그들과 수평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 가족 구성원들이 사랑과 친밀성을 바탕으로 상호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적 규범을 습득하면, 그들은 자신의 가족 구성원을 대하듯 그 이외의 타자들을 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이기적인 개인들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행동하고 협상하는 시장이나 인간관계에서의 형식적 공정성만을 강조하는 공적 영역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면이기도 하다.
가족 구성원들 간의 사랑과 친밀성이 위계적이거나 비대칭적이지 않고, 수평적 네트워크 관계로 구성된다면, 그리고 구성원들이 서로의 자유와 평등을 상호 인정하고 배려한다면 이들의 관계는 개개인의 평등한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주의적인 요소들과 상호 사랑과 친밀성이 이를 뒷받침하는 공동체주의적인 요소들이 적절하게 융합되는 형태를 띨 것이다. 이는 공적 영역의 형식적 공정성과 시장의 비인격적인 이해타산 행위가 갖는 한계를 뛰어 넘는 미래 지향적인 공동체의 모습일 것이기에, 이것을 기반으로 우리는 오히려 시장과 공적 영역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식민화, 전유화를 막고 이것들로부터 훼손된 인간 상호 간의 인격적 관계를 회복하는 토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가족을 민주화하는 방법이 바로 시장과 공적 영역의 부당한 간섭과 침해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길이며, 거꾸로 이 가족 구성원들의 민주적 삶과 규범을 토대로 시장과 국가가 보다 실질적으로 민주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열린 공동체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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