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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한국교원대학교 편 - 한국인의 정체성 : 동아시아의 小中華

2014-09-29 15:55:02   , 1435 조회

written by 4월회

한국인의 정체성 : 동아시아의 小中華


일 시 : 2012. 10. 4(목) 15:00~17:00
장 소 : 한국교원대학교
강 연 : 박홍규 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주 제 : 한국인의 정체성 : 동아시아의 小中華


1. 한국인은 누구인가?

한국인을 영어로 번역하면 코리안이다. 코리안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국어로 직역하면 고려인이지만 우리에게는 한국인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다. 과거에는 우리를 조선인이라고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북한인들만이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 같다. 한 국가의 명칭과 그 국민의 명칭이 함께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으로서 대한민국의 국민은 한국인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민이 조선인인 것은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것보다는 좀 더 포괄적이고 동시에 역사적이다. 고조선 이래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고대왕국들의 국민들은 물론이고, 고구려라는 이름을 본 딴 고려와 그 이후의 조선왕국과 대한제국의 국민들,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고려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고려민주인민공화국)의 국민들을 통 털어 한국인(고려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포괄적으로 한국인을 규정하는 데에는 중국과 한국의 건국신화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선조를 黃帝라고 하는 중국인들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선조를 檀君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황제의 자손이라 하고,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단군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이다. 황제와 단군에 관한 역사 기술은 그 성격상 건국신화와 같아서 정사에서는 깊이 다루고 있지는 않으나, 桓檀古記나 三國遺事 같은 야사는 신화나 전설의 수준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읽혀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은 단군의 고조선 건국일을 개천절로 제정하여 국경일로 하고 있으며, 북한은 평양외각에 단군 능을 만들어 법통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 이래 ‘붉은 악마’로 불리는 한국의 응원단은 수천 년 전 황제와 장기간 동아시아의 패권을 다투었던 치우의 초상을 상징물로 내세우고 전 세계의 경기장에서 한국 팀을 응원하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치우가 한국인인지는 역사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우나 지금 젊은 한국인들이 중국의 황제와 패권을 다툰 치우를 앞에 내세우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세대전만해도 일본인을 능가하자던 한국인의 꿈이 이제는 중국인과 겨루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고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인들의 이러한 꿈이 아주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늘에서 내려 왔다는 한인이 곰과 호랑이를 경쟁하게 하여 승자를 그 아들 한웅의 배필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인내심에 관한 우화같이도 보이지만, 그 경쟁의 내용을 보면 그 의미가 사뭇 달라진다. 한곳(굴)에 정착하여 농산물(쑥과 마늘)만 먹고 오래 견디는 능력이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었는데, 이야말로 유목민이 농경민이 되는 데에 필요한 능력이 아니었을까? 신화에 등장하는 한인, 곰, 호랑이는 실제로는 세 개의 유목부족, 즉 새, 곰, 호랑이를 상징으로 하는 부족들이 연합하여 고대 농경국가를 건설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왜 이들은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농경생활을 택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지금도 우리가 볼 수 있는 만리장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국경선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유목문화권과 농경문화권을 가르는 경계선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토지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유목민과 토지와 그 곳에서 소출되는 농작물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농경민이 다투지 않고 한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을 것이며, 농경민들이 그들의 토지 경계선에 담을 쌓고 유목민들과의 단절을 분명히 한 것이 바로 만리장성인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를 ‘中華’라고 자처하는 중국의 농경민들이 담을 쌓고 유목민들과의 거래를 끊게 되자, 농작물을 필요로 하는 유목민들은 담 밖의 만주와 압록강변에 정착하여 농작물을 자급하는 수단을 마련하게 되었고, 그 결과 고조선이라는 고대농경왕국이 탄생하여 다른 모든 유목민들과의 무역거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을 만리장성 밖의 모든 무역과 거래의 중심지가 된 ‘小中華’로 인식하게 된 연유이고, 지금도 만리장성 밖에 있는 만주의 심양에서 이러한 흔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역사는 이렇듯 유목문화권과 농경문화권간의 끊임없는 마찰과 경쟁의 역사로 볼 수 있으며, 중국의 역대 천하통일전쟁이 서쪽으로 향하지 않고 항상 동쪽의 소중화를 목표로 해 왔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중국인이 중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소중화를 차지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동아시아 전쟁은 우선 漢나라와 고조선간의 전쟁을 시작으로, 隨와 고구려, 唐과 고구려간의 전쟁으로 그리고 몽골과 唐, 거란과 宋, 만주와 明간의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 전쟁에서 중국이 이긴 전쟁은 漢나라의 천하통일전쟁 단 한번이고, 나머지는 소중화 쪽에서 승리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唐이 한때 천하를 제패한 것으로도 보이나 이는 신라와의 연합으로 이루어 진 것으로서 이후 동아시아 평화의 기본 틀, 즉 중화와 소중화간의 공존체제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의 근거는 몽고나 만주가 한국을 형제국으로 대한 반면, 중국은 한국을 형제국 보다는 속국으로 취급한 역사적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소중화의 끝자락에 위치한 일본의 경우는 서양의 근대문물이 동아시아에 들어오면서 전쟁의 무기와 기술을 먼저 습득한 결과 한동안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으나, 한때는 대동아 공영권 등 동아시아 지역 평화와 번영에 대한 구상을 제시하여, 식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중국인의 중화와는 달리 한국인의 소중화는 일찍이 인종적 다양성보다는 공통성을 보이고 있었다. 고조선은 유목민들에 의한 고대국가로서 중국의 만리장성 밖에 있는 동아시아의 모든 유목민들 간의 무역 및 거래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중국인을 제외한 다양한 동아시아 지역인들이 이에 포함될 수 있었으며, 이들은 중국인들이 오랑캐라고 부르던 유목민들로서 ‘몽고반점’이라는 인종적 공통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언어적으로도 소중화는 중국의 한자를 빌려 쓰기는 하였으나 중국어와는 판이한 우랄 알타이계통의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였으며, 제각각 다른 글자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소중화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권 안에 다양한 언어와 글자가 있었던 것은 과거 중국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으로서 우리는 다만 그들의 언어가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었다는 데에서 그 공통성을 논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언어를 우리는 한국어라 하는데, 그 연원에 대한 언어학적 견해는 다양하다. 일본의 아이누 족 언어의 한반도 방언이라는 식민통치기 일본 언어학자들의 궤변을 비롯하여, 인도어와 독일어에서 파생하였다는 유럽학자들의 주장, 폴리네시안 계통의 언어와 유사하다는 학설 등이 있으나, 한국어가 만주어와 일본어 등, 동아시아 유목인들의 언어와 함께 우랄 알타이 퉁구스어에 속한다는 설이 현재 정설로 되어있다. 한국의 지리적 위치의 특성을 볼 때, 인도나 폴리네시아 언어와 유사성을 보이는 것은 지리 및 기상학적으로 보아 연안 항로나 태풍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들이 항해중 또는 어로행위 중 태풍을 만나 이의 경로를 따라 한반도 남쪽에 표류하여 살면서 사용하던 언어가 한국어에 접목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말큰사전에 있는 단어 중 54%가 한자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을 보면, 한국어가 중국어를 포함하여 수많은 외래어를 수용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탄복할 따름이다. 이러한 인종적 언어적 다양성과 포용성은 소중화의 특징으로서 단군의 고조선 이래 한국인의 특성으로 아직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이러한 한국인의 소중화정신은 중국인에 의해서, 그리고 심지어 인종-언어적으로 그 뿌리가 같은 몽고, 일본, 만주인들에 의해서 많은 상처를 입은 것도 부정할 수 없으나, 오늘날 한국인에 의한 4∙19 민주학생혁명이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의 학생운동에 기폭제가 되고,  한강의 기적으로 전 세계의 개도국들이 한국의 발전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인의 정신이 아직 건재함을 실감케 한다. 특히 첨단과학기술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휴대폰과 자동차 분야에서, 그리고 한류와 K-pop 등 문화 예술분야에서 한국인이 보여주고 있는 최고 수준의 실력은 ‘하면 된다’의 정신 즉 can-do spirit의 현 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과거 동아시아 유목민들의 귀감이 되었던 소중화의 정신이 이제는 전 세계 개도국들의 귀감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대화와 세계화(modernization and globalization)로 표현되는 유럽과 미국의 세계중심론(중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2. 한국인의 국가전략과 비전: 소중화의 재현

서양의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이집트의 역사와 거의 일치하는 5000년 전, 당시 유목민이었던 한국인은 동아시아의 동북지역 압록강변에 고조선이라는 고대 왕조를 세우고 당시 황하와 양자강유역에 걸쳐 진(秦)이라는 고대왕조를 세우고 농경문화를 꽃피우던 중국인과 더불어 만리장성을 경계로 동아시아를 양분하여 지배한 적이 있었다. 유목문화와 농경문화를 접합시킨 한국인들은 그 후 도교, 유교, 불교를 중국인보다도 더 찬란히 꽃피워 동아시아 문명발달에 크게 기여한 바 있으며, 뒤늦게 서양에서 전래된 기독교도 이제는 한국인의 엄연한 종교로서 기존의 전통종교들과 그런 데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비록 중국과 같이 대국도 아니고 일본과 같이 부국도 아니지만 외국인들의 눈에 “동방의 등불” 또는 “아시아의 보석”으로 보이는 것은 한국인의 이러한 동양문명에의 기여와 서양문명에 대한 포용성 그리고 동서양의 문화를 잘 조화시킬 수 있는 지혜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인식과 시대적 사명감을 바탕으로 우리 한국인 특유의 외래문화 수용능력과 끈질긴 근면성을 적극 발휘할 때 우리는 새로운 한국의 건설은 물론, 새로운 동아시아 그리고 나아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끌려갈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주변국가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 동아시아지역 경제의 역동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세계적인 국가로 발돋움하는 발판을 구축하여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는 과거 전략적 요충지로서 열강의 세력 각축장 내지는 戰場으로 전락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민주주의가 전 세계의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여진 상황에서 한반도는 중국의 ‘이를 보호해주는 입술’(脣亡齒寒)도 아니고 일본의 ‘심장을 노리는 단도’(dagger pointed at the heart)도 아니다. 그 보다는 차라리 한국은 중국, 러시아 등의 대륙세력과 일본, 미국 등의 해양세력을 연결시켜주는 가교로서 그리고 통로로서 동아시아 지역국가들 간은 물론 동아시아와 여타지역간의 자유주의적 교류와 협력 그리고 나아가 이들 간의 민주주의적  평화와 안정을 구조화하는 열쇠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한국이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통일이 되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북한이 이러한 변화에 적극 동참한다면 남북한이 긴밀한 협조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번영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들어서 남북 간의 정상회담과 교류 협력의 확대, 단절된 도로망과 철도망의 복원, 금강산과 개성의 특구 지정 등은 모두 남북한 간의 협력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문제를 활용하여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양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으나 문제의 본질이 남북한 간의 신뢰구축과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구축이기 때문에 앞으로 전개될 남북 간의 협력체제 진전 여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관계개선과 협력의 선후를 따지기보다는 이들을 연동하여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면 지루한 협상에 따른 시간낭비도 줄일 수 있을 것이며 남북 간의 신뢰구축에 필요한 시간도 벌 수 있을 것이다.

개방과 개혁이라는 전 세계적 인류문명 발전의 조류를 외면하고 주체라는 미명하에 시대착오적 폐쇄와 경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북한체제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분명치 않으나 세계사 발전에 대한 한국인과 동아시아인의 기여를 저해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반도문제를 남북한 간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그리고 나아가서 전 세계적 문제로 이해하고 이의 해결도 남북한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지역협력과 세계적 평화구조 구축 차원에서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한국은 우선 자유와 민주의 위력을 동아시아의 이웃들과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을 정도로 체제를 정비하고 우리의 역사적 문화적 위치를 분명히 함으로서 국민 누구나 우리체제와 우리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하여야 되겠다. 이렇게 되었을 때 우리의 경제와 정치는 이웃 동아시아국가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우리는 동아시아의 자유화와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북한도 우리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 얼마든지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음을 명심하고 통일이 될 때까지는 그들을 이웃으로 대우해 주는 포용력을 발휘, 다른 어느 동아시아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지역협력과 동아시아 발전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자유주의의 합리성과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바탕으로 동아시아가 발전의 활기찬 발걸음을 내디디게 될 때 동아시아인들은 한국의 전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북한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은 앞으로 남-북 협력을 지역협력에서 한반도 통합을 동아시아 통합에서 모색한다는 통일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동아시아지역질서의 구축이라는 큰 틀 속에서 모색하고 지역질서가 세계질서의 하위질서라는 점을 감안하여 이미 그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유럽지역질서와 대등한 입장에서 상위 질서인 세계질서 구축에 동참한다는 외교 전략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한국은 동아시아 지역협력과 지역질서모색에 중국과 일본 등 지역 국가들이 적극성을 보이도록 촉구하는 한편, 이러한 움직임이 남북한 간의 교류확대와 궁극적인 통일로 연결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동아시아 지역질서 구축을 위한 지역 국가들과의 협조, 그리고 세계질서 구축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 속에서 이루어질 때 한국은 통일을 앞당기는 것은 물론 동아시아질서의 관건을 갖는 통일한국으로 당당히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인류는 역사 이래 최대의 번영을 누리고 있으나 아직도 ‘문명 간의 충돌’로 보이는 테러와의 전쟁,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금융 외환위기 등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기존의 세계체제가 새로운 시대의 요청을 적절히 해결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단일 다극체제(uni-multipolar system)의 등장과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의 등장이 전 세계인들에게 평화와 번영을 기약하기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하여 유럽을 시작으로 지역차원에서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으며, 동아시아도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지역협력을 모색하였으나 지금은 이들 지역협력을 연계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현재 ASEM을 통하여 유럽과 동아시아는 지역 간 협력의 기본 틀을 마련하고 있으며 APEC과는 달리 경제문제이외에 정치, 군사, 외교, 안보, 문화 등 포괄적 의제를 채택하고 있다. ASEM에서의 이러한 논의는 필연적으로 동아시아측 회원국 간의 입장조율을 위한 대화를 촉진하고 있으며 유럽 측이 EU라는 지역협력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동남아 지역협력체와 동북아 3국으로 구성된  ASEAN+3에서 자연스럽게 공동체 형성 문제가 제기 되고 있어 동아시아 질서를 모색하기 위한 분위기는 어느 정도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경제 질서와 관련하여 한국의 FTA 추진 외교는 유럽경제의 근간인 EU와 그리고 세계경제의 중심인 미국과 FTA를 체결함으로서 지역경제협력에 활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주요 경제국들과 더불어 ASEAN과의 FTA 협정을 체결하는 등, 조만간 한국, 일본, 중국 간에도 FTA가 체결될 전망이다. 이러한 일연의 지역 국가 간 FTA 협정체결은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의 FTA(자유무역지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정치, 군사, 외교, 안보 분야에서도 ARF를 통한 신뢰구축과 예방외교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으며 유럽핵공동체(EURATOM)와 유사한 아시아핵공동체(ASIATOM)의 결성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특히 9.11 테러사태이후 ASEAN이 EU와 유사한 반테러 협력의 제도화에 나서고 있어 동아시아에서의 정보협력과 법사협력도 그 단초가 마련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EU의 결성 목적이 지역국가들 간의 전쟁방지에서 비롯되었음을 상기할 때 EU의 최초 3개 공동체였던 ECSC, EEC, EURATOM과 유사한 지역협력체 결성을 동아시아가 추구하는 경향은 역시 ASEM을 통한 유럽과의 지역 간 협력이 동아시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동아시아가 유럽과 같이 지역협력기구들을 갖게 되면 이 기구들을 운영하기 위한 기본 원칙과 절차가 필요하게 될 것이며 이는 바로 동아시아 질서의 토대가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국제기구가 민주화와 민주 질서를 강조하고 있고 경제교류도 자유시장의 원칙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예상되는 동아시아 질서도 미국이 냉전이후 신세계 질서의 근간으로 하고 있는 민주화와 자유화의 기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ASEM에서 유럽과의 지역 간 협력을 원만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도 EU와 같은 지역협력체를 결성하여야 되지만 현실적으로 ASEAN이외의 동북아 3국은 지역협력체 없이 별도로 지역 간 협력에 참여하고 있어 현재 이를 보완하기 위한 한-중-일간의 동북아 지역협력체 결성문제가 신중히 검토되고 있다. 우선 동북아 지역협력체를 결성하고 이를 기존의 ASEAN과 통합하여 동아시아 지역협력체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이 모든 움직임이 ASEM이라는 틀 속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동아시아 질서 구축의 전망은 유럽과 동아시아간의 협력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태를 갖게 되며, 얼마나 성공적으로 추진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 변화를 맞아 한국이 모색하여야 하는 역할은 그 지정학적 위치와 국가 능력을 감안 할 때 유럽과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협력의 인프라 구축과 유럽의 안보질서와 조화될 수 있는 동아시아안보질서의 틀을 제시하여 앞으로 냉전이후 세계질서 모색에서 동아시아가 유럽과 대등한 위상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와 유럽 간의 관계는 현실적으로 통상 무역 분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지중해-수에즈운하-인도양을 거처 동남아를 통하는 해상운송로 즉 해양로를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대EU무역이 대부분 동남아를 경유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ASEAN이 ASEM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인정치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특히 싱가포르의 경우 이러한 해상 교통의 요충에 위치하고 있어 스스로를 세계화 시대의 중심으로 자처, 유사한 국가 목표를 설정한 한국과 은연중에 경쟁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싱가포르의 위치는 홍콩의 중국편입으로 더욱 중요해 지고 있다.
위와 같은 ASEAN중심의 해양로와 더불어 그 규모는 아직 미미하나 현재 유럽의 철도망과 연결된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를 이용한 동아시아-유럽 간 육로 화물 운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최근 양 지역 간 교역량의 증가에 따라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특히 그 동안 외부와의 교류가 적던 러시아, 몽고, 중국 등 구 사회주의 대륙 국가들이 개방되고 인적 물적 이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이들 지역에서의 도로망과 철도망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마르코 폴로 이래 ‘실크 로드’ 등 대륙로가 동아시아-유럽 간 문물 교류에 크게 기여한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고속화 시대에 걸 맞는 철도와 도로망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게 될 경우 양 지역 간의 관계는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대륙로는 해양로에 비해 거리와 시간에 있어 비교가 되지 않으며, 시베리아의 풍부한 천연자원 개발 촉진, 몽고 등 아시아내륙지방 발전, 동북아 지역 협력 촉진 등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볼 때 동남아를 경유하는 해양로보다 전망이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북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대륙로 건설은 그 규모와 이에 따르는 비용, 그리고 다양한 관련 국간의 이해관계 등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차피 동유럽과 러시아의 구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지원이 G-7이나 EU, 그리고 UN등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고,  특히 이들의 낙후된 인프라가 발전의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 현실성이 아주 낮은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우선 ASEM의 보완 차원에서 유라시아 포럼 창설을 적극 제의할 필요성이 있다. ASEM이 해양로를 통한 양 지역 간 협력이라는 성격을 감안하여, 대륙로를 통한 지역 간 협력 차원에서 유라시아 포럼을 제안하고 이를 동북아 지역 협력과 연결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ASEM에서 제외된 러시아, 몽고 등 아시아 내륙 국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

유라시아 협력은 한국이 그 동안 추진하여 온 북방 정책을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한-미간 특수 관계를 바탕으로 미-러간 화해와 협력 분위기를 잘 이용할 경우 동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인 평화와 번영에 기여 할 것이다. 이처럼 유라시아 협력과 아시아-태평양협력이 동북아를 중심으로 상호 연결되었을 때 한국은 그 지리적 위치와 주변국과의 기존 협력 관계 등을 바탕으로 능히 세계적 협력망의 주요 축을 담당하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우리의 세계화 전략추진에도 새로운 장을 열어 주게 될 것이다.
유라시아 협력의 분위기가 조성되면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이를 제도화하는 사업을 시작할 필요성이 있다. 구체적 사업으로서 ‘유라시아 대륙횡단철도(ETR : Eurasian Transcontinental Railway)’ 회사 창설을 우선 프랑스의 알스톰사와 한국의 고속전철공사간에 합작형태로 추진하고, 이에 EU, 러시아, 중국, 몽골 등 관심 국들이 참여할 것을 종용 또는 제의할 필요성이 있다. EU는 현재 그들의 철도망을 아시아와 연결시킨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으며 이의 일환으로 한국에 고속 열차(TGV)를 이미 진출시킨바 있다. 앞으로 한국 내 고속 철도망이 완성되면 이를 연장하여 북한-만주-몽고-러시아-동구를 거처 유럽 철도망과 연결시키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이다.

ASEM에서 비슷한 철도망 연결을 동남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ETR의 지선 확장 차원을 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 TGV라는 대EU카드를 적극 활용, EU, 러시아, 중국 등과 함께 ETR회사를 설립하고 ASEM 철도망 구상을 포용할 기초 마련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유럽과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유라시아 시대에 걸 맞는 한-일 동반자 관계를 모색함으로써 유라시아 대륙횡단 육로건설 사업에 한국과 긴밀히 협력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출 필요성이 있다.

일본은 현시점에서 러시아와의 영토 분쟁 등으로 ETR보다는 해양로를 선호할 것이나 앞으로 한-일간에 해저터널이 가설되어 철도망이 연결될 경우를 대비, 어느 정도의 성의는 보일 것이다. 한국도 이러한 대륙횡단육로 건설 사업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 특히 앞으로 예상되는 물동량 확보를 위해서도 일본과 협력할 필요성이 있다. 유럽의 서쪽 끝 섬에 위치한 영국과 같이 아시아의 동쪽 끝 섬에 위치한 일본으로서는 한국의 유라시아 대륙횡단로 추진이 갖는 의미를 십분 음미할 것이며 “동경에서 런던까지”라는 슬로건을 우리가 적극 활용할 경우, 기존의 BESETO(북경-서울-동경)협력을 유럽으로 확장시킨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ASEM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의외로 좋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해양로와 대륙로간의 균형적 조화를 위한 사전 협의 또는 협력 방향에 대한 동반자적 대화를 가질 필요가 있으며,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마련된 양국 간의 협력관계를 확대 지속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유라시아 시대의 인프라 구축과 더불어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분야는 유라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단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과거 미·소 등 세계적 국가들 간의 냉전대결의 戰場으로서 막대한 희생을 치른 한반도야말로 아시아 국가들 중 가장 세계평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음을 감안, 아시아 평화를 세계평화와 접목시키는 한국의 중간역할은 역사적 순리임을 아시아와 세계에 널리 홍보 선전할 필요성이 있다.

한-미간의 특수 혈맹관계를 잘 알고 있는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도 과거 아시아의 평화가 미국에 의하여 유지되어 온 것처럼 앞으로 당분간은 주한미군과 한-미 연합군사력에 급격한 변화를 원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중국과 일본 등을 잘 설득하여 앞으로 아시아 평화가 자체적으로 유지가 곤란하게 될 경우, 해군과 공군력을 바탕으로 하는 외부균형자로서의 미국역할을 제시하고 이 경우 미국은 한국을 발판으로 以夷制夷식 균형, 조정, 중재자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가능성과 이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성이 있다.

미국도 그들의 세계질서 구상에서 유럽과 동아시아에서의 지역질서 구축이 장애가 되기보다는 상호보완적으로 되기를 바라고 있고 현실적으로 ‘협력안보’ 전략이 이러한 상황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질서 모색에서 하나의 지역 세력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지역질서 형성과 발전 방향에 영향을 주어 궁극적으로는 세계질서와 지역질서가 상호 연계되어 평화와 번영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과 같이 동아시아에서도 지역질서가 형성되면 미국은 지역협력의 틀이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마련될 것이며 한국이 이들의 중간에서 균형자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의 지역협력에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 간에 영국이 균형자 역할을 담당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미국으로서는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각각 영국과 한국과의 특수 관계를 적극 활용하여 유럽질서와 동아시아에 개입하는 것이 비용 절감은 물론 세계질서 유지에 효율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평화구도가 유럽에서의 독-불 관계개선의 선례를 따라 일-중간의 화해와 협력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한국과 미국 간의 특수 관계를 매체로 하여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세계평화구도와 연계되면 지금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냉전이후 지역질서구축의 선례가 그대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 모색에 적용되기 수월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평화구도와 유럽평화구도를 연계시키는 작업을 좀 더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 그들의 미래를 위한 비전과 전략을 마련함에 있어 뚜렷한 역사관을 바탕으로, 현재에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우리는 동아시아와 세계의 미래역사창조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한국인의 이상과 꿈이 동아시아인들 그리고 세계인들 모두로부터 공감을 얻게 될 때 우리는 과거 소중화의 주인이었던 한국인의 거듭난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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