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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서울시립대학교 편 - 시민리더십과 한국민주주의

2014-02-17 16:50:34   , 1122 조회

written by 4월회

시민리더십과 한국민주주의
  -건강한 공동체를 향한 시민리더십-


일 시 : 2011. 11. 14(월) 오전9시
장 소 : 서울시립대학교
강 연 :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정치학 교수
주 제 : 시민리더십과 한국민주주의 - 건강한 공동체를 향한 시민리더십


1. 잠시 잊었던 나라생각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개인중심, 성공중심, 그리고 쾌락중심의 문화와 가치관이 크게 확산되고 일상화된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흔히 접하는 방송이나 잡지들에서 개인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말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졌고, 그 속에서는 어떠한 형태든 자기 자신만의 개성과 독특한 삶의 방식들이 앞 다투어 소개되고, 개인이익의 극대화로서의 성공이 강조되고 선전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또 갖가지 형태의 쾌락추구방식들이 때로는 첨단수준 문화형태로까지 포장되며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참투해 있습니다. 먹고 즐기는 문화가 극에 달해있고 성의 상업화와 도구화가 만연한지 오래입니다. 이같이 개인과 개인들의 성공 그리고 그러한 개인들의 자유로운 쾌락추구가 일상화된 시대에서 공공성이나 공동체정신, 심지어 민주주의나 정치리더십과 관련된 담론들이 끼어들 자리가 별로 없어 보입니다. 한 마디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특징은 지나친 “삶의 사사화”(the privitization of lives)이며 “공동체의 상실”(the loss of communities)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고대 그리스의 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공동체적 존재입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폴리스적 동물”입니다. 즉, 인간은 공동체속의 일원으로 살고 또 그것으로부터 기대되는 역할을 충실히 담당할 때 비로소 인간다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개성이 강하고 개인적인 성취를 많이 한 사람일지라도 친구, 기족, 마을 그리고 국가와 같은 단위의 이웃들과 고립되고 소외된 자아에 머물러 있다면, 그는 바쁘게 쫓기고 불안한 속에서 생존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여유 있고 덕스러운 행복한 생활인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지요. 앞에서 말했던 자기성취와 쾌락에 탐닉한 개인들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일정한 형태의 공동체 속에 함께 있을 때에 사람다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순수한 우리말 중에 “나”와 “나라”와 “누리”가 모두 “ㄴ” 혹은 [n]음가로 시작하는 단어들로, “나”는 “나라”를, “나라”는 “누리”를 지향할 때 “나”답구 “나라”답되, “나라”가 “나”를 강제로 억압하지 않고 “누리”가 “나라”를 제국주의적으로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민세(民世) 안재홍 선생의 정치사상이 다시 돋보입니다. 다시 살펴보면 “남”이란 단어도 “나”와 아주 가까운 말이지요. 그리고 “아(我)란 무한히 확장 할 지어다”라면서 개인적 생존과 안일에 머물러있는 “작은 나”를 “가아”(假我)라 하고 개인적 삶속에서 나라와 민족을 품고 전진하는 “큰 나”를 “진아”(眞我)라 했던 단재(丹齋) 신채호 선생의 말이 다시 새롭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방건국과 6.25, 그리고 경제근대화와 정치민주화를 숨 가쁘게 거치는 동안 그러한 가르침들을 잠시 잊고 살았습니다. 앞에 닥친 엄청난 과제들을 먼저 해결하고 살아날 방도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했고 중요했으며, 그러한 과제들에 맞서고 해결하는 일들은 대부분 국가나 정부, 유력한 정치인들 그리고 공무원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특히 강조했던 민주화시대를 거치면서 개인들은 국가의 책임 있는 주인과 주체로서 마땅한 일을 감당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중요한 책무들은 국가나 정부가 맡아 할 것으로 치부하면서, 대부분의 개인들은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와 남을 의식하지 않는 성공주의,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쾌락주의의 유혹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의 우리 각자는, 대한민국의 주인들로서, 동서고금의 가르침들을 다시 돌이켜, 그동안 우리가 상실했던 “남”과 “나라”와 “누리”와 같은 이웃들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가꾸는 일이 시급합니다. 또 그럼으로써 여러 차원의 공동체와 그 속에서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일이 매우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또 지금은 남북관계가 냉각되어있지만 장차 남북교류가 활성화되어 상호방문하게 될 때, 우리는 북한주민들에게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이고 민주주의체제에서는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를 위해 지금 우리는, 그리고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2. 나는 나라의 주인입니다.

첫째, 먼저 지금의 우리 모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민주공화국(Demoractic Republic), 대한민국의 주인임을 새롭게 자각해야 합니다. 또 이미 그런 자각을 하고 있다면 이제부터는 민주공화국의 주인으로서 행동하는데 부지런해야 합니다. 고대부터 대한제국시기까지 우리는 군주시대를 살았습니다. 군주시대에는 나라의 주인이 군주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는데, 이는 곧 우리 모두 각자가 평등한 가운데 나라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주인으로서 책임과 의무, 그리고 권리가 보장되어있으니, 각자는 그것에 충실한 국민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제치하에서 3.1독립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지자,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제 우리 모두가 황제”라 하며 감격했습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스스로 나서는 사람은 “주인”이요, 그렇지 않고 지나치게 자기에게만 머무는 삶에 빠져있는 사람은 언제나 “손님”이라 강조했던 그의 가르침은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주인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개인적 삶에만 탐닉하지 않고 남과 나라와 누리에 관계된 삶에 관심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우리는 이 같은 가르침에 합당한 주인들로서 살아왔습니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이 세워졌고 가난을 극복하고 정치민주화까지 일구어냈고, 이제 OECD회원국가로서 자동차, 선박, 전자분야에서 세계 톱을 달리고 각종 스포츠에서 세계1위를 고수하며, 유엔사무총장까지 배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야구를 제패하고, 축구월드컵 4강뿐 아니라 세계180여개 국가들 중 네 번째로 특허를 많이 보유한 지식산업 국가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각자는 보다 세심한 배려와 부지런함을 갖춘 세련되고 멋진 주인이 되도록 조금 더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인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세밀한 관심과 배려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주인은 손님보다 부지런하게 거동하며 빠진 구석, 소홀한 부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들을 챙기고 보살피는데 책임감을 가지고 마음 쓰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주인은 자연스럽게 먼저 자기 자신의 주인인 것이며,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일에 여유 있는 자세로 임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주인정신으로 행동했던 선인들을 우리의 왕조사 속에서도 무수히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만,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들이 주인인 오늘날에는 더욱더 그래야 하고 또 그런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 주인들이 전례 없는 세계경제위기 속에서 국가차원의 온전한 공동체 형성이 아직도 미흡한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먼저 실천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다음 두 가지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첫째, 그동안 “다 그런 거지 뭐”하며 적당히 넘기며 침묵하고 외면하던 습관을 버리고 이제 공공사에 있어 문제가 있다싶으면, 입을 열어 “아니다”라 하고 옳다고 여겨지면 “옳다”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사랑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비굴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까지 침묵의 가치를 익히는 연습은 충분히 했기에 이제 더욱 입을 열만합니다. 그래서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서 선거 때가 되면 반드시 투표하거나 입후보하여 자기의 뜻을 나타내고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주인인 나는 먼저 남 헐뜯는 말을 삼가고 칭찬에 앞장서면서도, 내가 낸 세금으로 고용한 공무원들의 부정과 비리를 발견했을 때 모른 체하지 말고 즉시 고발해야 합니다. 또 운전할 때 적당히 무시했던 정지선을 스스로 정확하게 지키고, 불법주차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불법주차한 차를 발견하면 즉시 경찰에 신고하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불법으로 쓰레기를 태우거나 허가 없이 산과 강에서 큰 돌들을 반출하는 것을 보면 즉각 찾아가 제지하고 신고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민심을 사납게 하거나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른바 선진 국가들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성숙한 국가로 된 것입니다.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국민 각자의 희생적인 활동이 건강한 민주주의국가의 바탕이란 뜻입니다. 그동안 특히, 대한민국 60년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 국민들의 이 같은 주인노릇이 생략되거나 약했기 때문에 나라의 머슴들(public servants)이 제멋대로 주인 행세했던 나라였음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합니다.

나라사랑의 마음은 정치한다는 사람들의 독점물이 결코 아닙니다. 신분과 직업이 무엇이든 나라의 주인과 같은 마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주인으로서 사랑하는 마음이란 솔로몬 왕이 “그래 네게 아이를 둘로 나눠 줄 테니 나눠 갖거라.”했을 때, 아이의 생명이 죽을 것을 안타까워했던 생모가 나서서 “아니요, 차라리 그 아이를 저 여인에게 주소서”했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또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이 소양강댐 공사 시, 시멘트 댐으로 하면 국고손실과 낭비가 너무 많을 것을 염려하여 “아니오, 그것보다는 무수히 널려있는 모래와 자갈로 하면 더 좋습니다.”라고 용기 있게 제안했던 바로 그 마음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인정신은 애국심과 아주 가깝게 한민족의 역동적인 역사 속에서 사상과 행동으로 면면히 흘러온 것이며, 그 전통 속에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누구라도 그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서로 보듬고 챙겨주는 살가운 스킨십(skinship)이 탁월한 국민입니다. 그래서 최근 이어령 선생이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서로 업어주고 업히는” 따뜻한 인간관계, 끈끈한 인정사회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이 같은 인정문화를 보다 활발한 대화문화로 더욱 세련시켜 건강한 공동체 형성에 크게 마음 쓸 때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정과 교감이 바탕을 이루는 기존의 인간관계 테크닉을 ‘비합리적’이라고 비판만 하지 말고, 오히려 잘 유지하되 다만 그것을 아웃과 국가와 연결된 각떅입니안들에 대한쓸 지하고도 재미있는 대화의 기회로 적극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민주주의의 성숙한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는 서로서로 격려하고 인내하면서 유익하고 건전한 대화문화가 정착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스킨십으로 감성과 인정을 살려가되, 여기에 덧붙여 진지한 대화를 익히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훈련을 땀땀이 해야 하며 그런 가운데 절제하며 서로서로 설득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해가는 훈련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또 그것이 시민사회에서 성공하고 존경받는 리더십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민주시민사회 구성원으로서 대화와 토론의 기본자세가 무엇인지와 주요한 기본테크닉들을 익히는 것이고 또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을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이끌어가는 과정입니다. 말과 마을이 동일한 어원을 공유하고 있고 또 말동무가 가장 친한 친구인 것처럼, 대화공동체의 형성이야말로 가족공동체, 마을공동체, 나라공동체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이며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누구라도 서로 대화하며 소통하는 것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적 존재인 사람이 해야 할 가정 기본적인 책임이자 의무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아침식사 때부터 가족끼리 즐겁고 격조 있는 대화하기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아침식사하면서 부모와 형제들과 재미있고 진지하게 대화하고 학교에 가면 공부도 재미있고 친구사귀는 기술도 발달합니다. 성격도 좋아지는 것은 물론 이지요 예전부터 시도하고 있는 “예고미수”운동을 적극 활성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화는 이런 사소한 인사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또 혹 아이들 중에 이웃지방이나 이웃나라로 유학을 가 있을 경우, 전화 값 아끼지 말고 자주대화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한번 비행기타고 가는 것보다 전화비가 훨씬 쌉니다. 요즈음은 인터넷전화로 하면 더 싸지요. 그러면서 공부얘기만 하지 말고, 집안이야기, 집안조상이야기, 마을이야기, 나라이야기 등을 서로 재미있게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때 바로 부모리더십이 발휘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동시에 기존의 스킨십 문화를 바탕으로 대화와 소통을 통한 민주적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만약 사람이 살 동안 스킨십에만 충실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과 이웃과 나라와 서로 말로써 소통하며 자아를 넓히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돈 많고 학식이 높으며 신분이 높은 사람일지라도 그는 동물들과 다를 바 없고, 행복한 인간으로서 자유함을 누리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주인은 언제나 덕스럽게 행동합니다.

민주주의는 법치(法治)라고 합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성향과 생각과 습관이 서로 다르고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적절하게 조절하고 공동체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법과 제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그 법과 관련된 제도들을 운용하는 정부와 공무원들의 공평무사한 복무태도가 매우 중요하지요. 그러나 민주공화국에서 그러한 정부와 공무원들의 법집행과 그로 인한 법치의 확립은 무엇보다도 나라의 주인인 시민들 각자가 절제. 충성, 준법, 정직, 성실, 공평함, 관대함, 약속지킴, 언행일치, 용기 등과 같은 덕목들(virtues)을 스스로 실천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시민들이 이러한 덕목들을 모르고 민도가 떨어진다 하여 나라의 머슴들(public servants)인 공무원들과 정부가 나서서 그러한 덕목들을 담지하고 실천한다는 명분으로 군림하고 때로는 독재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국가의 주인들인 시민 각자가 이 같은 덕목들을 스스로 먼저 실천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이웃들과 함께 공동체의 발전을 함께 도모하는 성숙한 선진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국민각자가 이렇게 나라의 주인답게 행동하며 주인역할을 제대로 할 때, 국민들의 심부름꾼인 공무원들도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해 봉사할 것입니다. 또 정치지도자가 아무리 좋은 목적과 비전을 제시하고 일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이 같은 덕목들을 실천하면서 주변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로 인해 신뢰를 쌓아가는 일이 없다면, 그 일과 수고들은 공적이 없게 됩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도덕(道德)과 수기치인(修己治人)이 강조되면서 “눌어언(訥於言) 민어사(敏於事)”의 가르침이 중요했고, 서양에서도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말을 하고, 훌륭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고(호머), 성공하는 군주에게는 무엇보다도 요모조모를 다 헤아릴 줄 아는 “신중함”(prudence)이 최대의 덕목이었습니다(마키아벨리).

그래서 과거 세종대왕도 가뭄대책을 강구하고자 궐 밖의 현장을 방문할 때는 백성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햇볕을 가리는 일산(日傘)을 들게 하지 않았고 진상품과 반찬가지수를 반으로 줄였습니다. 그리고 신분고하를 가리지 않고 백성모두를 “천민(天民)”으로 간주하여 그들의 생명을 공평하게 보살피는데 온갖 성실함을 다했습니다. 이순신 장군 역시 군사들과 했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으며 군율을 엄하게 시행하면서도 주민들과 군사들을 관대하게 보살피고 어루만지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왜구와의 싸움에서 연전연승할 수 있었습니다. 또 현대사회에서 성공하는 리더십과 인생에 관한 유익한 책들을 많이 썼던 데일 카네기 같은 사람은 마카이벨리식 목적합리주의에 의해 계교를 부리거나 비도덕적인 수단을 이용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최선의 진실함과 부지런함이 수반된 인간관계의구축이 사실상 훨씬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제미국의 정치학자 임스 번즈는 정직, 성실, 준법, 공평, 약속지킴, 애국심, 절제, 등과 같은 “행동양식가치들”(modal values)의 실천이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정치리더십의 필수요소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각자 제시했던 목적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고생했지만, 아직도 그들 중 어느 누구의 동상도 공공장소에 당당하게 서있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이 같은 덕목들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채 임기를 마쳤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반공건국의 공적이 있지만 친일잔재 청산이나 준법실천면에서 존경받지 못했으며, 박정희 대통령도 경제근대화는 이룩했지만 민주시민사회 건설을 위한 프로그램 실천에 크게 미흡했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복지제도 확립과 남북화해정책의 도입에서 성과를 보였지만, 주변과 친인척들의 비리와 부정을 차단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에서 보듯 민주사회에서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과 실천도덕의 문제는 별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첫째, 그런데 우리의 경험을 되돌아 볼 때, 여러 가지 “행동양식가치들”(modal values) 중에서 특히, 우리가 주인으로서 먼저 준법(遵法)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에 대한 깊은 자성(自省)이 필요합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들과 같이 정치하는 사람들은 으레 법을 무시하거나 초월하여 편법이나 불법을 적당히 저질러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고, 일반국민들도 법이나 규정을 지키는 것보다 적당하게 로비하고 뇌물도 뿌리면서 일을 도모하는 것이 능력 있고 성공하는 사람의 처세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모두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회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민주주의는 구민들이 스스로 지배하고 다스리는(self-governing) 체제이므로 누구보다도 먼저 법을 지키고 규정을 엄수하는 것이 참다운 정치 성숙한 민주주의의 시발점인 것을 다시 깨eke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는 자기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의 질서를 유지할 필요에서 스스로 계약을 맺어 정부를 세웠고 또 그에 따른 법을 만들어 그것을 먼저 지키고 복종하는 일이 민주국가 구성원들의 기본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모두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구성원임과 주인 됨을 포기해야 합니다.

다만 그동안 정치지도자들이 준법에 의한 정치의 수범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들 역시 준법의 중요성과 의의를 별로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난 60여년의 민주 정치사를 지냈습니다. 과거와 같은 독재시대라면 몰라도 이제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대통령이 세워지고 정부가 새로 만들어지게 된 지금에는 누구든 법을 먼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각자가 나라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동의하고 참여해서 만든 법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무요 책임임을 깊이 각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지선 지키기, 쓰레기분리수거 등과 같이 아주 조그마한 부분에서부터 법과 규정을 알뜰하게 지키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둘째,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모든 구성원들을 내가 먼저 “귀한 주권자들”(important sovereigns)로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고 격려하며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과거 일제식민 통치자들은 우리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켜 한국인들이 서로 존경 하기는 커녕, 서로 불신하고 미워하며 단합하지 못하게 했었는데, 이러한 악습이 여전히 일부 사람들의 뇌리와 사고방식에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해방이후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정상적인 교육이 미비했고 구미국가들을 모델로 삼는 국가발전정책들이 시행되다 보니 일제감정기의 그러한 의식과 관행들이 제대로 교정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자신과 역사를 다시 정리해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옛날부터 우리사회에는 접빈객(接賓客)이란 전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냥하러 온 거지에게도 손님대접을 각별하게 했고 혹시라도 그 거지가 욕심을 품어 밥그릇을 훔쳐갔으면 멀리까지 사람을 보내 밥뚜껑을 챙겨 주기도 했습니다. 경주의 최 부잣집 전통에는 어디에 살든 자기 집 주변 100리 이내에는 가난해서 굶주리는 사람이 없게 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世宗大王)은 모든 백성들이 하늘로써 비롯되었다 하여 “천민(天民)”으로 귀하게 여겼고, 정약용(丁若鏞)도 인간을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여 행동할 줄 아는 “자작적(自作)” 존재로 간주하여 조선후기의 개혁을 도모했고, 최제우(崔濟愚)는 사람을 “한울님”으로 보아 모든 인간이 신분에 구애됨이 없이 평등함을 주창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다. 일제치하에서 단재(丹齋) 신채호는 우리 모두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대인(大人)”으로서의 자각이 필요함을 역설했고, 민세(民世) 안재홍은 모든 존재양식의 출발점이요 핵인 “나”에서부터 “남”과 “나라”와 “누리”가 “낳음”을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귀한 정신적 유산을 지니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 각자는 이제 국가의 귀한 구성원들로서 민주공화국의 어엿한 “주권자들”(sovereigns)임을 서로 새롭게 인식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도산 안창호의 표현대로라면 우리 모두 “형제요, 자매”이고, 함석헌 옹의 말대로라면 민주사회를 열어가는 주체로서 “씨알”들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동료시민들”(fellow-citizens)입니다. 그러기에 정치인들이나 직장인들이나 어디에 살든, 어느 정당을 지지하든, 또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살든, 대한민국헌법을 인정하고 그것에 복종하고자 한다면, 모두 나라의 주인이며, 마을이나 나라의 일에 다함께 관여하는 “동참자(同參者, participants)”이요, “동반자(同伴者, partners)” 임을 서로 먼저 인정해야합니다. 민주시민의 관대함이란 그저 자기보다 불쌍한 사람들을 동정하는 것만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 속에서 서로서로 이 같은 주권자들로 먼저 인정하고 기본적인 존경의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남의 잘못이나 실수를 지적할 때도 손아래 사람이라도 함부로 반말로 말하거나 감정을 내세우지 말고 차분하고 예의바르게 존댓말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로 나와 같은 나라의 주인들이고 당당한 개인으로 살아가며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는 주권자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야 서로가 떳떳한 가운데 존경하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며 나라가 제대로 서는 것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바로 이러한 성숙하고 넉넉한 나라의 주인들이 참여하고 협력해서 만들어가는 나라입니다.

4. 주인은 언제나 자기역사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동양의 고전 <논어>에 보면, “온고지신溫故知新) 가이위사의(可以爲師矣)”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즉 “과거역사를 찬찬하게 살피고 새로운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지요. 여기에서 “사(師)”는 직업으로서 선생님이 아니라 직업이 무엇이든 두루 모든 사람들의 “사표”(師表)가 될 만한 훌륭한 선비란 뜻이지요. 그래서 군대의 사단장도 “師團長”이라고 씁니다. 요즈음말로 “리더” 혹은 “리더십 있는 사람”이란 뜻이겠지요. 그리고 이 말의 핵심은 “온고”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라고 “고”자가 “古”가 아니고 “어떠한 일이 그리된 사정(事情)과 혹은 그 내력(來歷)”이란 뜻이 담긴 “故”입니다.

즉, 이것에 의하면, 리더란 옛것만을 고집하는 그런 콱 막힌 사람이 아니고, 어떠한 사안을 접했을 때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고, 관련된 사람들의 생각과 처지를 먼저 헤아리기에 힘씀으로써 신중하고 지혜롭게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하게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온고(溫故)에 충실한 사람들은 “사연을 듣기 전에 급한 말을 함부로”하지 않으며(성경) “말이 비록 느릴지라도 행동에는 민첩합니다.”(논어). 공자의 말들이 아직도 힘이 있고 성경의 메시지가 여전히 강력한 것은 그 속에 역사와 역사속의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와 세종대왕이 오래도록 읽히고 회자되는 것은 모두 역사를 귀하게 여기며 수시로 역사를 들여다보는 근면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제대로 선 국가들에서는 예외 없이 자기나라와 민족의 역사를 꼼꼼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시민교육이고 민주리더십교육이며, 줏대 있는 나라의 주인들을 만드는 과정이지요.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제왕학을 가르치면서 “經” 즉 경전에 나오는 원리와 근본이치뿐 아니라 “史” 즉 역사속의 지혜와 가르침, 그리고 그것들로 이루어지는 현실적인 조건들에 대한 이해에 충실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모든 국민 각자가 주인인 시대에 누구나 다 자기역사와 생활주변의 여러 가지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하며 이웃을 배려하고 건강한 역사의식과 함께 애향심과 애국심을 훈성하며 자라는 것이 중요하고도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 속과 우리의 현재의 주변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실상은 많으며, 또 그러한 사람들 때문에 이 나라가 든든하게 지켜지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과거 일제 강점기에 3.1독립운동 이후, 우리 민족을 무단정치(武斷政治)로 탄압만 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일제는 이른 바 문화정치(文化政治)를 내세우며 문화, 사상, 역사차원의 ‘교육’과 ‘계몽’으로 민족말살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면서 총독부는 조선 사람들에게 우리말을 못 쓰게 할 뿐 아니라 자기역사를 공부하지 못하게 해 자기 조상과 역사와 문화전통을 모르게 하고, 동시에 청소년들로 하여금 자기 부모와 조상을 비웃고 서로 불신하게 만들며, 대신 그 빈구석에 일본의 역사와 문화와 인물들을 주입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우리 민족의 의식과 정신을 일본화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해방이후 우리의 현대사는 이 같은 식민지시대의 잔재를 온전히 털어내지 못하고 허위허위 급하게 내달았고 그러나 보니 우리 역사에 대한 올바른 생각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각종 개발정책과 교육정책들이 추진되고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최근 저는 팔순을 훨씬 넘기신 어느 고위관료출신 원로기업인께서 세종대왕에 대한 강의를 들으신 이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나는 우리 역사를 한 번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었다.”고 실토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숭례문이 불탔고, 수많은 문화재들이 방치되거나 헐값에 팔려나갔고, 60년 현대사가 역사가 부재한 “뿌리 없는 역사”로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라의 주인들이 주인다운 역할을 제대로 못한 채 머슴들이 설치며 주인들을 우습게 보는 정치가 끝이 날 줄 모르고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당당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인들로서 마음을 새롭게 하고 온고지신의 지혜를 구하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뿌리 깊은” 새 역사 창조의 주체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은 과거처럼 정부나 국가나 공무원들이 할 일이 아니고, 언제나 나라의 주인인 내가 먼저 실천할 일입니다. 그러면 온고지신을 실천하기 위해 우선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그동안 못한 일들이 많기 때문에 새로이 마음먹고 할 일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나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내가 나라의 l주인임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우선 우리의 자녀들이 자기 동네의 역사와 현실에 관심 갖게 해야 합니다. 동사무소나 시청을 방문하여 마을을 위해 일하는 분들의 수고를 알게 하고 마을사정을 이해하게 해야 합니다. 시의회에 가서 어른들이 마을과 시를 위해서, 국회에 가서 나라를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또 그들이 장차 공직을 맡는 주인들로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하는지를 알며 자라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웃과 동네와 나라의 현안들에 대해 조금씩이라도 관심을 가지며 때로는 걱정도 하고 비판도 하며 자라게 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지방자치나 중앙정치가 비록 문제가 많고 불만스런 모습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나, 그래도 우리의 정치사에는 우리가 자부심을 가지고 어린아이들과 미래 세대들에게 보일 것과 말해줄 것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둘째, 아이들과 나들이 갈 때는 밥만 먹으러 가지 말고 수시로 기념관이나 역사관, 기념관들을 방문하게 하여 자기역사에 밝은 아이들로 키워야 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법이기에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기르는 것은 세계적으로 통하는 보편적인 교육원칙입니다. 미국아이들이 자기역사 속에서 조지 워싱턴을 만나고 프랑스아이들이 나폴레옹을 만나듯, 우리아이들은 우리역사 속에서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만나게 해야 합니다. 김구와 이승만과 박정희를 만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유성룡과 서희, 그리고 연개소문과 을파소와 을지문덕과 계백과 성충과 김유신과 진덕여왕을 만나게 해야 합니다. 정치가 비리와 부패로 아직도 헤매고 있을지라도 우리 역사 속에는 수많은 청백리(淸白吏)와 충신(忠臣)들이 얼마든지 있었음을 알게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부정과 부패와 떼법 만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아님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아이들이 해외배낭여행을 통해 외국인들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풍부한 역사지식과 상식으로 영어도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굿모닝, 하이가 영어회화의 전부인 줄로 착각하게 되고 저급의 하인영어나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어몰입교육과 외국어홍수시대가 초래할 “줏대위기”(identity crisis)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자기역사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고향, 그리고 나라의 중심 가치와 규범, 그리고 삶의 방향을 발견하고 그 바탕에서 해외의 청년들과 대화하고 교류하는 당당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하고 활동할 때, 우리의 아이들은 지구화시대에 리더십 있는 동량(棟樑)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5. 주(主)도(道)력(歷)으로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을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가 나라의 주인이자 민주공화국의 당당한 주권자들임을 잠시 잊고 지냈습니다. 대한민국이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선인들과 우리들은 다른 나라에 비할 수 없는 발전과 번영을 이룩했습니다. 그 사이 주인을 대신한 국가와 정부와 공무원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고 그 덕분으로 나라의 주인들인 국민들도 이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자기가 주인임을 자각했고 이제 21세기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 모두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요 나라의 주인임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라면 국가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먼저 덕스럽게 행동하는데 솔선해야 함도 알았습니다. 동시에 그러한 주인들은 자기의 역사와 전통을 찬찬히 살피는데 게으르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과거 나라를 잃은 뒤 단재 신채호님이 나라와 이웃을 생각하는 자아는 “참나”(眞我)라 했고 그렇지 못한 자아를 “거짓된 나”(假我)라고 했던 것이나, 최근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 교수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교수가 앞으로 참 성공하는 개인들은 평생공부하고 지식들을 종합화하며 창조적인 사고를 할 뿐 아니라 이웃을 참으로 존중(respect)하고 배려하며, 국가의 주인으로서 시민의식(ethical mind)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한 것은 탁견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나라의 주인(主人)으로서 이웃과 나라 일들에 침묵만 하지 말고 입을 열고 행동합시다. 또 우리 모두는 기존의 스킨십을 바탕으로 활발한 대화를 실천하고 가르칩시다. 둘째, 도덕적인(道德的) 시민들(moral citizens)로서 자기성공에만 몰두하지 말고 그 과정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생활, 약속 잘 지키고 준법을 실천하며, 이웃을 처음부터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동료시민으로서 먼저 인정하고 소통합시다. 셋째, 자녀들에게 주변의 생활사와 공공사에 대해 체험으로 알게 하고 동시에 역사(歷史)속의 인물들과 만나게 해주는 부모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우리 국민들 각자가 주인으로서 자기를 재인식하고 덕스럽게(virtuously) 행동하고 자기역사를 아끼고 알뜰하게 이어갈 때 21세기 대한민국은 더욱 빛나고 풍성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대한민국을 더 살기 좋고 건강하며, 자긍심 높은 나라로 만드는 “명예로운 혁명”(the Glorious Revolution)을 성취하는 길입니다. 이제 모두 주(主)도(道)력(歷)으로 명예혁명을 이룹시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논어 / 일리아드 / 성경 / 군주론 / 세종실록

James M. Burns 저, 한국리더십연구회 역.2000.<리더십 강의>.생각의 나무 / Howard Gardner저, 김한영 역, 2008. <미래마인드 : 미래를 성공으로 이끌 다섯 가지 마음 능력>. 재인. / 정윤재. 2003.<정치리더십과 한국 민주주의>, 나남출판. / 정윤재, 2004. “정치엘리트, 정치개혁,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기억과 전망>.봄호. 179-196. / 정윤재. 2004. “일제하 한국지식인들의 저항과 식민지근대화론,” 한국학중앙연구편, <식민지근대화론의 이해와 비판>, 195-269쪽. / 정윤재, 2005. “좋은 시민 만들기와 리더십,” 지역사회포럼 발표논문. / 정윤재, 2008. “세종대왕의 ‘천민 / 대천이물’론과 ‘보살핌’의 정치,” <동양정치사상사>. / 정윤재, 2008. “민세 안재홍과 21세기 대한민국,” <문명의 교류, 평택에서 세계로>, 발표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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