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국민대학교 편 - 창조는 편집이다
2014-02-17 14:50:56 , 2755 조회
written by 4월회
일 시 : 2010. 11. 16(화) 오후 2시
장 소 : 국민대학교
강 연 : 김정운 명지대학교 교수
주 제 : 창조는 편집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presentation, representation 다시 보여준다라는 것이다. 즉,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을 머릿속에 다시 한 번 또 보여주는 것이며 있는 것을 익숙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창의성이다. 또한 창의성은 생전 다 있는 거 새롭게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독일 말로는 ‘낯설게 한다. 낯설게 하기’이다.
21세기를 지식기반사회·정보화 사회로 규정한다. 지식은 자극·정보·지식이라는 3단계로 구성된다. 지식이 구성되는 원리를 나는 에디톨로지, 편집화라고 부른다. 자극에 대한 실험을 해보자. 농구장에서 노랑 선수 3명이 패스를 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영상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고릴라도 등장한다. 사람들에게 패스를 몇 번하는지 세보라고 할 경우, 사람들은 패스의 수만 세는데 집중하여 패스 도중에 화면에 고릴라가 지나갔는지, 아니 고릴라가 등장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게 된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못 본다. 다섯 명이 볼 경우에는 다섯 명 모두가 고릴라를 본다. 한 열 명한테 보여주면 절반정도 보고, 1000명한테 보여주면 약 100명 정도 보게 된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더 못 본다. 세상은 내가 보는 식으로만 보게 된다.
우리나라의 많은 청년들이 대학을 다니면서 중요한 것을 못 보는 거 같다. 본인에게 정말 뭐가 중요한지 모르고, 그냥 정해진 시간대로 공부하고 취직한다.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걸 놓쳐 버린다. 그런 것을 찾아내지 못하니까 중요한 사람이 못되는 것이다.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인생에 보람이 있고, 사는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중요한 역할을 본인의 눈앞에서 잡아내지 못한다. 이것을 자극의 선택적 지각이라고 한다. 즉, 인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지각한다.
인간은 자극을 받아들이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정보라고 한다. 지식은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이다. 달리 말하면 지식은 정보를 편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도끼, 망치, 나무, 톱 네 가지가 있다. 이 네 가지 중에 하나 빼라면 무엇을 빼겠는가?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망치를 뽑는다. 반면에 도시에서 자란 사람은 나무를 뽑는다. 시베리아 벌목공들한테 물어보면 벌목공들은 절대 나무를 빼지 않는다. 나무 없는 도구가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인간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추상적인 카테고리를 가지고 대상을 분류한다. 똑같은 정보지만 정보를 분류하는 방식이 다르다.
21세기에는 정보의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러나 정보를 분류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내가 유학 갈 때만 해도 자료가 없어서, 정보가 없어서 유학을 가기 힘들었다.학교 도서관에서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신청할 때, 지금처럼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지 않아 원하는 책을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원하면 하버드대학 도서관, 베를린대학 도서관, 국회도서관, 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다. 정보가 부족한 세상이 아니다. 이제는 정보를 편집해내는 지식 분석 능력이 결정적이다.
한국의 심리학자들이 왜 바보가 됐냐면 미국 심리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교과서만 가지고 연구를 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이라고 한다면서 죽을 때까지 미국 심리학만 하고 있다.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학자로서 나는 미국 심리학자들이 나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교수가 될 때까지 영어공부를 기본적으로 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 하버드 대학 교수들은 영어공부하지 않는다. 나는 독일에 유학도 갔다. 그래서 독일어도 공부해야했다.
새로운 지식이란 정보를 어떻게 편집해서 내 나름의 지식을 만들어 내냐는 것이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모두가 동등하게 수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편집하느냐가 경쟁력이 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같은 정보를 가지고도 다른 결과물을 가져온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부의 조직도와 이명박 정부의 조직을 비교해보자.
두 정부의 차이를 보면 노무현 정부 때 정보통신부가 있었는데 없어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섰을 때 이명박 정부에 의해서 국토해양부가 새로 만들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식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이었다. 아는 지식이 대부분 건설과 관련된 지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토해양부 만든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정보통신부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지식이 컴퓨터와 관련된 지식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권력이 되면 내 지식대로 세상이 움직인다.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 이론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를 고민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발전하는 대학들은 지식을 재구성했다. 예를 들어, 특성화를 통해 새로운 과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대학도 지식이고 개인들도 지식이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다. 당신이 지난 3일간 인터넷 가서 어떤 사이트를 방문했는가가 당신을 말해준다. 인터넷을 지식의 도구로 사용하라. 스마트폰은 전화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식 구성의 도구이다. 구성하는 방법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웹서비스 중에 Instapaper라는 서비스가 있다. 웹사이트를 방문하고 있다가 본인이 원하는 웹페이지는 클리핑 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 클리핑 된 데이터를 내 지식의 어느 부분에 넣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지식의 구성방법이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지식을 편집하는 것이다. 교과서는 15년 전 지식이다. 저널은 5~10년 전의 지식이다. 그러나 현재는 가장 최신의 지식이 온라인을 통해 공유된다.
그 지식들을 찾아내서 내 지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옛날에는 우리들이 정보가 없어서 뒤쳐졌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정보가 범람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그 정보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네이버(naver)가 왜 시장에서 성공했는가? 네이버(naver)와 다음(daum)을 비교해보자. 네이버는 '지식인', 다음은 'cafe'로 성공했다. 5년 전에는 다음의 'cafe'가 온라인을 지배했었다. 그러나 불과 5년 만에 그 자리를 네이버에게 내주었다.
다음(daum)이 성공하기 이전에는 인터넷 통신이 있었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이 있었다. 왜 사람들이 인터넷 통신을 했는가? 전화는 1:1 통신이었다. 하지만 인터넷통신은 떼로 들어와서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전혀 새로운 공간에서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다음(daum)은 그 '몰려다니는' 특성을 cafe라는 공간을 마련해준 것이었다. 한편, 네이버(naver)는 왜 사람들이 cafe에 몰려다닐까를 고민했다. 네이버가 내린 결론은 사람들은 지식을 공유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 것이 지금의 '지식인' 서비스이다.
블로그(blog)에서 내가 글을 올려 올리고나면 밑에다 태그(tag)를 달게 되어있다. 네이버나 다음에서 블로그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게 무한한 공간을 제공하는 대신에 태그를 달게 함으로써 개인이 가지는 지식을 블로그 서비스를 통해 공유하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블로그에 모두 올리고, 태그까지 달게 된다. 태그는 지식이 어느 맥락에 속해 있는지를 내가 알려주는 것이다. 태그를 통해서 네이버와 다음은 메타 태그를 만든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어디에 분류되는 것인가를 만들어 내는 작업니다. 곧, 개인의 지식까지 분류를 통해 규정해버린다는 것이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네이버나 다음에 의해 규정된다.
애플이 왜 성공했는가? 편집을 잘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아이폰과 갤럭시를 비교한다. 특히, 기술의 차이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폰은 기술의 차이가 아니다. 내가 아이폰이 국내에서 정식 발매되기 전에 삼성의 사장들을 모아 강의한 적이 있었다. "아이폰이 들어오는 순간 삼성 애니콜은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성의 사장들은 뒤에서 웃었다. 그들은 "교수님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요. 기술적으로 검토 다 끝났습니다. 기술적으로 우리한테 상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갤럭시S를 만들어 냈다. 난 한국기업이 잘되기를 바란다. 그렇기 위해서는 본질을 꿰뚫어야 한다. 아이폰과 갤럭시의 차이는 기술의 차이가 아니다. 편집의 차이이다.
아이폰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하드웨어의 편집이다. 아이폰이 개발되고 발매되었을 때, 연계되는 사업들이 번창한다. 예를 들어, 액정보호지를 만드는 사업이 번창한다. 그리고 아이폰과 연결되는 스피커 사업이 번창한다. BOSS사의 스피커는 92만원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아이폰 유저들이 구매한다.
하드웨어의 편집뿐만이 아니다. 아이폰은 내가 원하는 모든 음악을 내 맘대로 편집을 가능하게 만들어 줬다. 아이폰의 아이튠즈는 원하는 음악을 사용자가 마음대로 편집해서 들을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아이팟이 나오기 전에 아이리버의 MP3가 우리나라에서 개발, 발매되었다. 한동안 아이리버의 MP3는 전 세계를 지배했었다. 그러나 애플의 아이팟이 발매된 후, 상황은 바뀌었다. 하드웨어적인 성능만을 고려했을 경우, 아이리버의 MP3가 더 우월했다. 그러나 아이팟은 휠(wheel)버튼으로 터치의 개념을 도입하여 사용자에게 제공했다. 하나의 감각을 편집해놓은 것이다. 아이팟이 발매된 후 지금까지 어마어마한 기술이 발전했고 그 기술들이 아이팟에 탑재되었지만, 끝까지 변화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기술이 있었다. 그것은 '터치'였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터치 기술이 없었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폰 화면에 사용되는 터치패널은 LG디스플레이에서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술인 것이다. 그러나 애플은 그 기술을 편집하는 방식이 우리와는 달랐던 것이다. 우리가 터치의 기술을 단순히 누르는 방식을 고집했다면, 애플은 아이폰을 통해 다양한 입력방식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예전에는 디지털 세상에서 유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입력 툴이 자판이었다. 그러나 애플은 마우스를 만들어냈다.
자판기는 매우 원시적이다. 자판기 배열은 원칙이 없다. 무슨 원칙으로 'ㄱ,ㄴ'이 있고 'ㅅ,ㅇ'이 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ㄱ,ㄴ,ㄷ,ㄹ'보다 더 많이 쓰는 음은 'ㅆ'이다. 그러나 자판에서 'ㅆ'은 한 번에 입력이 되질 않는다. shift키를 누르고 'ㅅ'을 입력해야 한다. 이렇듯 접근이 불편한 것을 편리하게 만든 것이 마우스이다. 내 손을 통해 입력이 자유로워진다. 삼성 애니콜 터치의 기본은 40대 50대 여자의 피부와 유사하다. 찔러야만 안다. 그러나 애플의 아이폰은 10대 20대 피부이다.
이것은 인터페이스의 편집이다. 키보드를 없앴다. 디지털 세상에 사람들에게 박탈되었던 가장 큰 경험은 만지는 경험이었다. 아날로그의 모든 경험들은 만지고, 만져지는 경험이다. 디지털이 되면서 이게 사라져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사람들은 상대방을 손을 잡는 등의 만지는 행동을 한다. 상대방을 손으로 만져지는 감각을 통해 뇌리에 각인시키고 싶은 것이다. 애플은 그 손으로 만져지는 감각을 디지털 세상에 구현한 것이다.
근래에는 아이패드니 갤럭시탭 같은 새로운 형태의 디바이스가 출시되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지식이 더 이상 책으로만 전달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텍스트밖에 없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오면서 동영상이라고 하는 엄청난 매체가 생겨났다. UCC를 검색하는 유튜브 사이트에 가서 중요한 학문들 검색해보면 UCC에 다 나온다. 동영상을 한번 보는 것보다 정보전달 속도가 빠르다. 이것을 구현할 수 있는 디바이스가 아이패드이고 갤럭시탭이다. 나는 논문을 더 이상 논문으로 쓰지 말라고 주장한다. 텍스트가 아닌 동영상으로 논문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지식전달 매체가 다르다. 요새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사람들은 TV를 통해서, 인터넷의 동영상을 통해 지식을 받아들인다. 지식전달 방식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그렇다면 새로운 매체에 맞는 지식 전달 체계도 달라져야 한다.
동영상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는 무엇인가? 영화란 관점과 시간을 편집하는 것이다.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가 시간을 편집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필름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사물을 잘라낸 것이 아니라 시간이 편집된 것이 영화이다. 감독의 역할은 편집이다. 편집이 어떻게 됐느냐에 따라서 똑같은 장면이 전혀 다른 느낌을 가져온다. 그래서 스티븐시걸 같은 형편없는 배우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스티븐시걸의 행복한 표정, 슬픈 표정, 화난 표정, 외로운 표정은 모두 똑같다. 그러나 그 다음 장면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서 그 표정이 달라 보인다. 우리나라 배우 김태희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눈만 크게 뜨고 연기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편집에 따라서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초적 본능'이라는 영화에서 배우 샤론스톤은 몽타주를 통해서 인간에게 경험된 가장 고차원적인 결론인 에로시즘을 표현했다. 영화에서 샤론스톤의 그 유명한 장면, 다리를 교차하고 앉아 있는 장면이 어떻게 나왔는가? 그 장면은 그냥 장면만을 보여준 것이 아니고 장면 사이사이 극중 등장인물들의 오가는 화면을 편집하여 사람들의 정서를 극대화 시킨 것이다. 샤론스톤의 차기작은 보다 더 새로운 차원의 작품이었다. 슬리버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개인적으로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중에 가장 에로틱한 영화였다. 그 영화는 단순히 훔쳐보는 것만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이중의 관음증이 존재한다. 훔쳐보는 것을 훔쳐보는 영화이다. 영화의 소재는 큰 건물의 주인이 방마다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여 방을 임대하는 사람들을 훔쳐보는 것이다. 우리가 몰래카메라를 재미있어 하는 이유는 훔쳐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하여 관객들은 훔쳐보는 건물 주인의 시선을 또 훔쳐본다. 이중의 관음증이다.
건축은 관점을 편집한다. 예를 들어, 강의실도 관점이 정해져 있다. 우리나라의 강의실의 경우 학생들이 의자에 앉으면 강사를 보게 되어 있다. 이미 관점들이 정해져 있다. 내가 베를린 대학에서는 의자가 앞을 보며 배치되어 있는 곳은 매우 큰 강의실 밖에 없었다. 일반 강의실은 의자가 원으로 둘러져 있다. 의자의 배치, 창문의 위치 등을 통해 세상은 항상 관점을 정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constructive라고 한다. 이 관점이 원래는 원근법이다. 원근법은 3차원을 2차원으로 줄이는 기술이다. 원근법은 소실점을 가진다. 이 소실점을 기준으로 세상 거리에 맞추어서 사물을 배치하는 것이다. 3차원 2차원 줄일 때 나타나는 이 소실점이 서구 문명의 핵심이다. 동양이 왜 서양에게 당했냐면 이 원근법의 발전이 늦었기 때문이다. 소실점이 하나 들어가면 객관성을 만든다. 소실점은 누가 찍는가? 화가가 찍는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의 소실점을 누가 찍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 주체가 자신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는 이것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 고등학교 3년의 시간으로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대학교도 본인의 적성에 맞게 선택했는가가 중요하다. 소실점을 '내'가 찍었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하다. 내가 내 인생의 소실점을 찍어버리면 그다음부터는 인생이 재미있어진다.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재미있어 진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서양의 그림을 어설프게 흉내 냈는데 소실점이 없다. 정조대왕의 행차도라는 그림은 중심이 없다. 소실점은 르네상스시대의 화가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시대 화가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다빈치의 그림 중에 ‘수태고지’라는 작품이 있다. 마리아가 천사가 나타나서 아기를 잉태할 것에 대한 성화의 장면을 표현한 작품이다.
- The Annunciation (1472–1475), 수태고지 , 레오나르도
사람들은 이 그림이 잘못된 그림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 그림의 소실점이 일치가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도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그림에서 벽돌의 각도를 보라. 마리아의 오른팔을 보라고 왼팔보다 훨씬 더 길다. 식탁의 위치도 이상하다. 비둘기도 살쪄 보인다.
500년 동안 사람들은 이 그림이 잘못된 그림이라고 하였다. 그림이 그려졌을 당시에는 원근법이 절대로 어겨서는 안되는 원칙이었다. 인상파 화가, 피카소 같은 작가가 등장하여 원근법을 파괴한 것은 그 후대의 일이었다. 따라서 다빈치가 그린 이 그림은 괴상한 그림이라고 평가받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밝혀진 것이 있는데 이 그림은 원래 큰 성당의 벽에 붙어 있던 그림이었다. 아무도 그 그림을 정면에 가서 볼 수 없는 위치에 붙어있었다. 이 그림을 감상하려면 사람들은 옆에서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다빈치는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을 누가 어디서 보는가를 계산해서 그린 것이었다. 그런데 500년 동안 사람들은 그림을 정면에서 본 것이었다. 정면에서 보았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시선은 창작자가 규정하는 것이다. 시선을 결정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고, 시선의 방향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배우는 것이 공부하는 것이다. 마이크로 소프트가 왜 성공했는지 아는가? 윈도우라는 개념을 훔쳐왔기 때문이다. 윈도우라는 것은 원래 매킨토시 것이었다. 그것을 마이크로소프트가 훔쳐왔다. 사이버세상을 들여다보는 윈도우라는 개념을 갖게 되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세상의 구성 원리가 달라지는 것이다. 터치라는 개념을 개념 하나만 가지니까 아이폰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세상은 개념으로 구상되는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자는 위대하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이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들을 찾아내 분별해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 '라이언킹'에서 아이가 아빠를 죽게 만든다. 이 이야기는 친부살해 라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애니메이션에 적용시킨 것이다.
TED.com을 보면 미국에서 창조적인 강사들이 디자인부터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20분 동안 강연을 한다. 그것을 잘 들여다 봐야한다. 그 강연을 통하여 세상의 지식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교과서는 10~15년 된 이야기이다. 물론 기초적인 지식이 필요하고, 강연을 듣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정보를 강연과 연관 지어 편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컴퓨터는 편집의 도구로 사용되기 안성맞춤이다. 예전처럼 학교에 앉아서 교과서만 외우는 것이 공부는 아니다. 특히, 대학교 때는 지식을 편집해 내는 것이 공부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웹 어플 중에 Instapaper라는 것이 있다. 인터넷 검색시 간단히 클리핑하는 도구이다. 필요한 웹자료들을 인스턴트 자료로 잠시 저장하고 필요할 때, 내 지식에 맞게 편집할 수 있게 되어 있는 형태이다.
지식 편집을 컴퓨터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나는 폴더를 만들어 내고 분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데리고 있던 연구원들이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 기준을 폴더 정리하는 것으로 놓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폴더 이름이 뭐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진다. 폴더를 일목요연하게, 그리고 폴더명을 해당 자료의 성격을 구분지어 짓는 연구원에게 높은 평가를 준다. 그러나 디폴트로 정해지는(‘개똥구리’, ‘지빠귀’ 등)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연구원들이 많다. 매우 한심하다.
나는 일주일에 자료 값으로 백만원 정도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독일책방, 아마존닷컴, 일본책방 같은 곳을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내게 필요한 중요한 개념들을 찾는다. 그 개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책을 파는 인터넷사이트는 대부분 목차를 보여준다. 그러한 목차들을 들여다보면서 개념들을 찾아가고, 사용한 단어의 꼬리의 꼬리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찾았던 목차나 자료들을 내 개념에 맞게 다시 정리하고 분류한다. 나는 책을 사도 책을 다 읽지 않는다. 대신에 목차만 읽고 책장에 도로 꽂아놓는다. 그리고 필요할 때, 다시 찾아서 본다. 책을 다 읽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어제 내가 읽었다는 말은 써놓고, 필요할 때 자료만 찾아내면 된다.
동영상 자료 같은 경우도 UCC를 찾고 편집을 해서 내 지식으로 만든다. 편집할 때 쓰는 툴은 애플의 키노트 어플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워포인트는 사고를 문장으로 표현하는데 익숙한 툴이지만 키노트는 그림이나 영상으로 편집하기 적합한 툴이면서 나의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강의가 있을 때, 키노트를 켜놓고 내가 저장해놓은 모든 인스타페이퍼로 가서 내 폴더하나 정리하면 강의 준비가 끝난다. 공부하면서 정보를 편집해내서 새로운 지식을 구성해 내는 원리만 알아내게 되면 세상은 무서울 것이 없다. 애플이 어떻게 마이크로소프트를 따라 잡았겠는가? 5년 전만 하더라도 애플이 전화기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겠는가? 삼성이라는 어마어마한 기업이 있고 소니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기업이 있었지만 애플이 시장을 뒤엎을 수 있었던 것은 개념 하나이다. 그들이 해냈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는 없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5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매우 빈곤한 나라였다. 풀뿌리 캐먹던 민족이었다. 6.25전쟁 때 동족끼리 죽이고 살리고 했던 나라이다. 지금의 내전이 심각한 캄보디아 수준이었다. 그때 우리나라를 불쌍해서 도와준 나라가 필리핀, 태국이었다. 지금 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필리핀, 태국 우리가 우습게 본다. 이러한 결과는 결국 우리의 선배들이 노력하고 세상을 바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세계에서 우리가 우습게 보일 이유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세계를 잘 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는 모른다. 30년 후에 우리를 우습게 본 그들이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은가? 기술력, 경제력으로 우리는 우습게 보일 나라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식당에 가보면 독일사람, 미국사람 바닥에 앉아서 밥 먹는다. 너무너무 힘들어 한다. 땀 뻘뻘 흘리면서 먹는다. 그들은 의자에 앉아서 먹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의자 앉아서도 먹고, 방바닥에 앉아서도 먹는다. 누가 더 세계화 된 것인가? 서양 기준에 꼭 맞춰야 하는 이유는 없다. 우리는 오히려 다양하게 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너무 행복한 것이다.
내가 처음에 미국사람, 독일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내가 왜 독일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하는가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은 우리나라 선조들이, 우리 선배들께 감사해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국도 알고, 독일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30년 후에 이 세상의 주인은 우리들이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개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 세상을 보는 내 관점을 만들어 내야한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너무 주눅 들어있다. 내가 주눅 들어 있는 것을 한번만 뒤집어 놓게 되면 세상은 나의 마음대로 된다. 행복, 즐거움, 새로운 지식이 모두 내 마음대로 된다. 그 기쁨을 알면 너무 행복해진다.